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옌렌커 작가의 작품 [ 작렬지 ] 를 읽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대한 이야기답게 그 스케일이 엄청나고 중국 특유의 과장되고 초현실적인 묘사가 곳곳에 숨어있다.
주요 스토리는 촌에서 진, 현 그리고 시까지 계속해서 번영했던 자례촌을 대표하는 쿵씨 집안 4형제의 역동적인 인생사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개인적인 스토리일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집단주의 안에 개인은 녹아 없어져있고 어느새 집단의 목표만 생생하게 살아남아 꿈틀거린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중국의 흥망성쇠,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자그마했던 촌이 거대한 도시로 커나가기까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쿵씨 집안의 가장 쿵둥더가 옷에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진 새똥을 묻히고 다닌 일 때문에 감옥에 끌려간다. ( 왜 이것이 반역죄인지는 잘 이해가 안 갔다 )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서 행해진 일이긴 하나, 주동자는 바로 마을 촌장인 주친팡이다. 쿵씨 집안과 주씨 집안은 그 일을 계기로 원수가 된다. 중형을 선고받고 고된 감옥살이 끝에 돌아온 아버지 쿵둥더는 4형제에게 다짜고짜 거리로 나가 물건을 주워오라고 한다. 처음에 만난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거라면서.
| 모두 나가거라. 지금 당장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 (28쪽 ) |
둘째 아들인 쿵밍량이 제일 먼저 거리에서 마주친 것은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게 한 주요인물인 촌장 주친팡의 딸 주잉이다. 둘은 서로를 재수없어하는데 어라?? 주잉의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 너한테 시집간다고. 평생 너희 쿵가를 내 손안에서 갖고 놀 거야! ( 31쪽 ) |
쿵밍량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떨쳐버리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이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종이에 싸인 인장석이다. 누군가의 도장,,,, 어떤 타이틀을 상징하는 도장이 그의 어떤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세월은 흐르고, 마을 주위를 다니는 느려터진 기차에서 물건을 훔치는 방식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쿵밍량은 자례촌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그 비법을 전수한다. 그 비법을 계기로 마을을 부유하게 만든 덕분에 새로운 촌장이 된 쿵밍량,, 아버지의 원수인 주진팡에게 침을 뱉으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주친팡은 가래침에 익사하여 죽게 된다. ( 이와 비슷한 과장된 묘사가 책 곳곳에 등장한다 )
사실 이 [ 작렬지 ] 에서 주요 인물을 꼽자면 단연코 쿵씨 집안의 둘째 아들 쿵밍량과 그의 영원한 반쪽 주잉이다. 아버지 주친팡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후 마을을 떠났던 주잉은 어느새 세련된 복장을 한 채 돌아와 마을에 엄청난 부를 안긴다. 반면에 기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 훔친다는 말을 바꿔서 씀 ) 방식으로 마을에 부를 안겼던 쿵밍량은, 기차가 빨라지는 바람에 물건을 훔치던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나가서 입장이 곤란해진다. 이때 나서서 그를 도와주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주잉이었다!! 화류계에서 일하면서 엄청난 부를 만들어 마을에 안겼던 그녀가 이미 쿵밍량보다 앞서서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었던 것, 이제 그녀와 함께 손을 잡는 일이 쿵밍량이 살 길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쿵밍량과 함께할 운명을 점쳤던 주잉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책 [ 작렬지 ] 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개인의 감정 ( 사랑, 행복, 분노 - 이것은 가끔 보였다 -, 좌절, 희망 - 이것도 가끔 보임 - 등등 ) 이 잘 보이지 않고 오직 더 큰 어딘가로 나아가려는 목표, 목표, 또 목표만 보이는 이야기. 자례촌을 진으로, 현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시로 만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쿵밍량의 눈에는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절망도, 더 나아가서는 부인과 그녀가 낳은 아들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전진하는 쿵밍량이 혹시,,,, 과거와 현재의 중국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해보았다.
| 오늘날 중국인과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국가의 상황은 지나친 허망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영혼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구체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현대의 땅과 미래의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 껍데기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몽유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 옌렌커 작가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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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왜 자꾸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이 떠오르나... 그랬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 이해할 수는 있는데,,, 그게 왜 모두의 욕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집단이라는게 이렇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의 욕망은 어느새 개인의 것으로 탈바꿈되어 개인의 삶을 박탈해갔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더이상 " 나 " 가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
동생의 군대를 빌려서라도 일주일안에 멋드러진 공항을 지어 자례현을 시로 만들고야말겠다는 쿵밍량의 욕망과 자신이 거느리는 화류계 여성들의 미인계를 이용하여 남편의 정치적 입지를 쥐고 흔드는 주잉의 모습에서 뒤틀리고 왜곡된 욕망만 보였다. 그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책에서 독특한 면은 작가가 " 신실주의 " 라고 표현한 일종의 " 마법적 사실주의 (? 정확한지 잘 모름 ) " 인 것 같다.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지만 정신적 혹은 영적 차원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작가님께서 설명하신 부분이다. 국화줄기에서 모란꽃이 자라고 앵두나무 화분에서 작은 고추가 주렁주렁 열린다. 감나무에 붉은 귤과 오렌지가 열리고, 화장품 파우치에서 굴러나온 화장품 케이스에 장미꽃이 피어나고 썩어있는 장면이 묘사된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하고 모순적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고 김광석 씨의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 작렬지 ] 는 이야기의 구도는 단순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주제는 의미심장한 것 같았다. 쿵씨 가족의 둘째 쿵밍량의 출세와 운명적인 사랑 ( 집단의 욕망을 추구하느라 개인의 행복은 사라짐 ) ,,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쿵밍량와 대립하는 군인인 셋째 쿵밍야오,, (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와의 갈등과 마찰 ) 책 속에서 가족들의 운명을 읽는 넷째 쿵밍후이의 모습에서는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이라는 나라 속 전통과 과거를 중시하는 모습도 보이는 듯 했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몰락과 분열로 치닫는 쿵씨 일가의 가족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중국을 보여주는 듯한 책 [ 작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