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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오래봐야 알 수 있고 오래봐야 예뻐보이는 사람들. 냉정하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것 같았던 고복희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호텔직원 " 린 " 도 그랬고 엉뚱했던 한달 살이 여행객 " 박지우 " 도 그러했다. 대학 시절 그녀를 배신자, 겁쟁이라고 욕했던 평생의 사랑 " 장영수 " 도 그러했고 캄보디아 교민 사회의 발전을 걱정했던 목사님 " 이영식 " 도 그러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엔 " 하... 이런 까칠한 사람 곁에서 누가 있겠냐고 ... " 이랬다가 나중엔 가슴 속에서 진정한 존경심을 느꼈으니.
원칙을 중요시하는 까칠한 여자 고복희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복희라는 사람은 절대로 춤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춤추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다만 그녀가 사랑했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장영수라는 한 남자는 한때 열정적으로 디스코를 췄고 열정적으로 사람을 사랑했던 인물이었다는 것.
절대로 호텔같은 건 운영하지 못할 것 같은 까칠한 사장님 고복희씨. 똑단발에 앙다문 입술의 그녀는, 그러나, 오늘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호텔 곳곳을 청소하고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 원더랜드 ] 라는 이 호텔은 캄보디아에 있다. 그녀가 캄보디아라는 먼 타향까지 흘러들어와 혼자서 호텔을 운영하기까지의 비밀이 많이 궁금했다. 그러나 비밀이 밝혀지기전,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한인교회와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펼쳐졌으니.....
고복희씨는 원칙주의자다. 약속은 꼭 지켜야하고 매우 단호한 사람이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한국 교민회에 나가지 않는 그녀의 주위에 언젠가부터 김인석이라는 사람이 알짱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만복회라는, 한국인들로 구성된 자치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제법 돈을 번 사람인데,, 그가 고복희씨 주위를 맴도는 목적은 뭘까?
음식도 맛없고 사장님이 친절하지도 않은 [ 원더랜드 ] 가 그나마 돌아가는 이유는 고복희 밑에 아주 우수한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린이라는 이름의 그 직원은 캄보디아 출신이지만 마치 한국인처럼 유창한 한국말을 할 수 있다. 린은 돈이 필요하긴 하나,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다. 그냥 [ 원더랜드 ] 가 발전하길 바랄 뿐. 까칠한 고복희의 원칙 위주의 경영 때문에 호텔이 파리를 날리기 시작하면서 린은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해내고 그것이 바로 [ 캄보디아에서 한달 살기 ] 프로젝트였다. 호텔에서 숙식 제공하고 싼값에 한달 살이 손님을 모시겠다는게 그녀의 전략.
그녀의 전략에 걸려든 한국인 여성 박지우. 그녀는 한국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어서 떠나온거나 마찬가지이다. 친구 한별은 부모가 돈이 많아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여유롭게 사는데 자신은 용돈을 긁어모은 돈으로 고작 온 곳이 여기 캄보디아이다. 게다가 [ 원더랜드 ]에서 홍보한 것과 다르게 앙크로와트는 이곳에서 버스로 7시간이나 걸린다. 앙크로와트에 대한 환상을 가득 품고 온 길인데 말이야 ... 울상을 지은채 환불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 원더랜드 ] 의 사장 고복희는 단호히 거절한다.
" 여기가 캄보디아 수도 아니에요?"
" 맞습니다."
" 근데 앙코르와트가 없어요?"
" 불국사는 서울에 있습니까?"
작가가 실제로 프놈펜에 8개월을 머무르면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대한 묘사와 그 지역 한인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생생하고 살아있다. 특히 한국에 가족을 놔두고 성공을 위해서 찾아왔던 최사장의 안타까운 죽음과 살아남기 위해서 반찬을 팔며 살아가는 억척녀 오미숙 아줌마의 삶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고복희의 캐릭터와 그녀의 추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생들이 한창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며 살았을 떄도 절대 수업만은 뺴먹지 않았던 그녀.
어떻게 보면 융통성없고 원칙주의자에 무뚝뚝한 그녀 고복희를 마음깊이 사랑했던 그 남자 장영수. 대학생일 때는 시민에 의한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어민를 위해서 불철주야 뛰어다녔던 그 남자 장영수. 고복희 여사는 그가 살아있지 않은 한국이 싫어서 떠나온지도 모를 일. 호텔 사장이 저렇게 장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꽉 막힌 고복희 여자이지만, 엉뚱한 한달 살이 여행객 박지우가 남긴 호텔에 대한 글 덕에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고복희라는 여자의 삶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의 격변과 그 속에서 피해를 입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조곤조곤 들려준다. 새만금사업으로 갯벌이 썩어나가는 바람에 고통을 받아야했던 어민들, 어민들을 도우느라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일찍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 장영수. 캄보디아에서도 위선과 가면은 쭉 이어진다. 교민들을 걱정하고 교회를 걱정하는 목사 이영수는 막상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최사장을 외면하고 부동산으로 조금 재미를 본 김인석은 고복희의 주위를 맴돌며 언제쯤 원더랜드 호텔을 장악할까.. 노리고 있는데.
그러나, 그 사람들의 뜻에 흔들릴 고복희 여사가 아니다. 어떻게 찾은 평화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 당당히 그들을 쏘아보며 절대로 호텔을 내놓을 수 없다는 고복희 여사. 책을 읽다보니 계속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가든 나에게 떳떳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를 깨닫게 해준 책, [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 오늘도 [ 원더랜드 ] 의 사장님 고복희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 청소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