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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사회 ㅣ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0
심너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2043년이라는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소멸 사회. 2019년 현재로부터 너무 멀지 않은 시간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정말 있을 수도 있을 사건들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였다. 그 시대는 현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만한, 그래서 아직은 시행되지 않은 법안들이 통과되어 어느 정도 시스템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법으로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 있고, 자신이 원한다면 조력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오프라인의 친구가 굳이 없어도 힘들지 않은 사회.... 언뜻 보면 뭔가 이상적인 사회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온라인 친구들을 사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두 친구 수영과 민수. 수영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민수가 이해되지 않는다. 머리도 좋고 독종인 민수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캐셔 일을 하는 어머니와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상태이다. 사실 민수는 천재에 가까운 아이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인공 지능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과 대화를 한다. 일종의 챗봇 같은 것인데 2043년이 배경이라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이다.
한편, 수영과 민수의 반에 노랑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학생이 전학을 온다. 성이 노 이름이 랑인 이 학생은 뭔가 비범한 포스를 풍긴다. 개량한복 같은 이상한 교복을 입고 온 것부터 학교를 마치면 꼭 기사가 나타나서 그를 태우러 오는 것까지. 아마도 부유한 집 자제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밝고 긍정적이고 착한 노랑이. 하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노랑이를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를 받아준 건 수영이와 민수. 하지만 비참하고 우울한 현실이 짓누르고 있는 민수에게 노랑이의 존재는 눈엣가시 같다. 대책 없는 노랑이의 낙관성이 그를 거슬리게 만든다.
세월은 흐르고 2055년, 수영이는 자신이 바라던 유명 신문사의 기자가 되어있다. 노랑이는 ( 원래의 바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민수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으나 현재는 애완로봇을 수리하는 기사로 살고 있다. 인공 지능 때문에 캐셔로 일하던 어머니가 해고된 이후 기본 소득으로 살아다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트피플이 되어서 한강에 살고 있는 민수. 여름엔 눈을 찌르는 햇살 때문에 힘들고 겨울엔 꽁꽁 얼어붙는 강 때문에 힘든 보트피플들. 그들은 대부분이 기본 소득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이 한국이라는 배경의 디스토피아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무력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극빈층이고 나이가 들면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서 신청하는 대열에 들어설 사람이라는 뜻......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게 과연 무엇일까? 본인의 의지인가?
이 [ 소멸 사회 ] 은 그리 멀지 않은 한국 사회에 내려앉은 어둠을 그리고 있다. 인공지능이 곳곳에 침투해서 인간이 설자리가 없는 사회. 이미 많은 것이 시스템화되어버려서 인간의 성취가 중요하지 않은 사회. 그 안에서 인간은 무력함과 절망을 느낀다.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 있으나 허울뿐인 그 시스템. 현재의 기초 생활 보장제도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 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을 더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 같은 그 모든 시스템들이 ( 인공지능과 기본 소득 체계 등등 ) 인간을 도리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책에 등장하는 노랑이의 엄마, 국회의원 채령과 노랑이 사이에 발생하는 대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그것이었다. 어쩌면 히틀러가 생각했던 개념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궁금해졌다.
" 나도 너랑 원하는 게 다르지 않아, 노랑아. 다들 행복했으면 해. 나는 굳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살리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 거 같다. 굳이 불행을 대물림할 필요가 있을까?
5천만 명의 불행한 사람이 이 좁은 땅에서 아웅다웅하는 게 나아,
천만 명의 행복한 사람이 기계의 봉사를 받으며 살아가는 게 나아?" ( 182쪽 )
" 인공지능 때문에 사람들이 설 곳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걸 생각해 봐.
이제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받쳐줄 곳은 없어.
기술 발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도적으로 조절해야지. 조력 자살 받던 사람들이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182쪽)
이 불안한 시대를 관통하는 메세지를 충실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잘 전달한 것 같은 작품이다. 우리는 과연 기계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인간은 그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물음을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용하여 대신 물어봐 주는 심너울 작가의 멋진 SF 소설 [ 소멸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