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란의 미녀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19년 10월
평점 :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달리는 낙타와 이슬람 전사들이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듯한 소설 [ 누란의 미녀 ]. 낯선 문화와 종교를 가진 민족인 위구르 족에 대한 이야기가 장엄하고도 장렬하게 그려지는, 한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소설이다.
책의 시작은 소금 교회라는 곳의 선교활동에서 시작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진표 선교사. 그는 한때 대학병원에 다니는 의사였으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염증을 느끼고 곧바로 선교활동에 뛰어든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낯선 환경에서 몸 바쳐 봉사하던 어느 날, 중국 북서쪽에 있는 신장지역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만남은 운명이었을까? 중국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게 가하는 독재와 압박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울분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는 주인공. 그런데 마침 부상을 입고 그의 품에 뛰어든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쟈오서먼. 마치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던 [ 누란의 미녀 ] 미라처럼 아름답지만 강인한 그녀는 위구르족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는 여성이었고 비록 부상을 입은 모습이었으나, 그녀를 처음 본 그 순간 그는 사랑에 빠져 버린다.
소설의 대부분은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위구르족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비열한 행태에 대한 고발이 아닐까? 중국 출신 한족이지만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도 위구르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는 장비종, 남편 비숍칸 교수의 실종 이후로 앞장서서 투쟁하는 여인 쟈오서먼 등을 보여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점점 본래의 선한 의지를 잃어가고 하느님의 말씀에 반하는, 즉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가는 특정 기독교 단체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 예로써, 소설에 나오는 서근석 장로는 에벤에셀이라는 대기업을 이끌며 소금교회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십일조를 헌금하지만 기업의 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근로자들 수천 명을 한꺼번에 해고하고 거리에 나앉게 하는 불의를 저지른다. 주인공 조진표는 대목사인 오한수에게 그 일에 관해서 의논을 하지만, 오한수 목사에게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처럼 취급된다. 그들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쯤으로 취급하는 오한수 목사.
한 사람이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 교회의 부흥 대회 때마다 한국 교회의 타락을 부르짖던 오한수 목사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서근석 장로를 보면서 조진표는 자신이 속해있던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떠난다... 쟈오서먼이 있는 땅. 신장의 우루무치로...
소설의 제목 [ 누란의 미녀 ]는 중국 신장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인데 무려 3800년 된 미라임에도 불구하고.그 형태와 옷차림이 마치 어제 발견된 것처럼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것으로 보아 유럽계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선교사 조진표는 아름답고 강인한 여전사 쟈오서먼을 보면서 누란의 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이 운명 공동체임을 받아들이고 이 소설은 끝난다. 자본주의 논리를 앞세운 기업과 교회의 위선을 고발하고 중국의 위구르 탄압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저자. 결국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여 큰 감동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