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집어던질 뻔한 적은 처음... 은 아니지만 하여간 이렇게 속이 터지는 책도 참 오랜만이다. (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말 가독성 최고예요 ) 읽기 전에는 재난이라는 절체 절명의 상황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는 여자들의 모습 혹은 그 와중에 드러난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이 인권 선진국이 아니었나? 아.. 맞다. 일반화의 오류를 여기에 대입하면 안 되겠지. 그러나 재난 와중에 드러난, 일본의 특정 공동체가 보여준 여성에 대한 낮은 인권의식, 남성의 뻔뻔함과 몰염치함에 그만 기가 막히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끝이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책을 찢.... 읽다가 분노 게이지가 이렇게 상승한 적도 참 오랜만이다.

진정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자면, 평소에는 매우 아름다운 소도시 " 가모메가하마 ".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이 마을을 주인공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한다.

태어나고 자란 이 가모메가하마 시를 무척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푸르른 바다에는 초록이 풍성한 섬이 점점이 떠 있고, 내륙에는 숲이 울창한 산과 언덕이 줄줄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는 은어가 노니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70쪽)

그러나 한순간에 재난이 발생한다. 바다에서부터 시작된 엄청난 지진과 해일은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휩쓸어버린다. 미처 손쓸새도 없이 밀려든 검은 물에 집들은 잠기고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려가버린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4명은 운 좋게도 어느 집 베란다에 매달리거나, 냉장고를 타고 물살을 타거나 등등으로 살아남게 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50대가 막 지난 후쿠코,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든 나가사와 그녀의 어른스러운 초등학생 아들 마사야 그리고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새색시 도오노이다.

순식간에 주인공들을 덮쳐버린 비극.. 그들은 집과 어머니 그리고 남편을 잃었다. 자연 재난을 과연 인간이 이길 수가 있을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 후쿠코는 집에 있던 남편이 목숨을 잃었으리라 추측한다. ( 그러나 별로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가워함 ) 나기사는 도시의 내륙에 있어서 마침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에 아들을 데리러 가지만 담임이 미처 말리지 못한 사이에 아들이 어머니를 찾으러 뛰어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재난 대피소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도모오의 경우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는 살아남았으나 관절이 약했던 시어머니는 그만 급류에 휩쓸려가고 공무원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있던 남편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소설이 과연 재난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히려 사회 고발 소설? 페미니즘 소설?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자연 재앙이 휩쓸고 간 뒤에 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난소로 갔는데 오히려 성추행을 당할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디로 피해야 한다는 말인가?

피난소의 대표 말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칸막이는 필요 없다는 거야

(182쪽)

여자들의 피난소

부녀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72시간 내에 이 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집을 떠내려갔지, 일자리는 사라졌지,

남자들도 속이 답답할 테니,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지요."

(208쪽)

여자들의 피난소

도대체 말인지 막걸리인지.... 담요 속에서 조심하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얼굴이 예쁜 도노오의 경우는 아기의 젖을 먹이는 상황을 낯선 남자들이 흘끔흘끔 훔쳐보는 상황도 당해야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니.... 그 이후에도 같은 여자라면 공감할 만한 분노 게이지 상승하는 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죽은 줄 알았던 후 쿠쿠의 남편은 멀쩡히 살아남아 돌아와서는, 시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BMW 를 산다 ( 욕이 올라온다 ) 도오노의 시아버지는 결국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긴 그녀를 시아주버니와 연결하려는 멍청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계속 그녀들을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이 멍청하고 뻔뻔하고 몰지각한 남자들!!!!! 그녀들은 과연 완전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책은 2011년 일본을 강타한 지진과 해일 사태로 인한 공동체의 분열 사태를 보여주고 그 와중에 여성이라는 특정 " 성 " 이 겪어야 했던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발언권이 전혀 없고 모든 권리가 남성에게 주어져 있던 상황. 그녀에게는 피난소가 지옥 같았을 수도 있다. 과연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흘러갈까? 지원금도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빼앗기고 눈치만 봐야 하는 그녀들이 자꾸 코너로 몰리는 것 같았으나 결국 여성들만이 가지는 연대감으로 그녀들을 훌륭하게 극복해낸다. 그녀들의 해피엔딩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감동의 파도를 겪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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