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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라이프 - 인생을 바꿔드립니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7
베르나르 무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모두 지워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즉 다시 말해서 두 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개인의 노력과는 별개로 주변 환경이 그대로라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에는 아마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살던 집과 타던 차는 물론이고 직업과 가족까지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미디어가 나서서 모든 절차를 처리하고 지원해준다면 어떨까? 과연 국가 권력은 개인의 삶의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지독한 삶의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버린 주인공 마르크 바라티에. 매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운 그의 머릿속엔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족도 회계일도 그에게 삶의 활력이 되어주지 않는다. 피해망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결국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날 자살을 결심한다. 빗속에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퇴근 무렵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려는 순간, 띵똥, ‘구세주’라는 이름으로 매일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자:구세주
제목: 두 번째 기회? (p. 51)
“우리가 그 메시지를 보낸 건, 당신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섭니다.
우린 당신의 삶이 아직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만약 당신이 동의한다면, 우린 당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p. 64)
그에게 메일을 보낸 남자. 대통령이 거느리는 거대한 미디어 회사를 위해 일하는 피에르 앙드레 노벨리는 마르크에게 ‘인생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좀먹던 절망과 고통, 공허감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불타오르던 작은 불씨인 호기심을 발견하고 다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정부와 미디어의 계획은 이러하다. 마르크처럼 인생을 포기하려거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작위로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다. TV 방송에 출연한 열 명의 지원자들은 ‘운명의 수레바퀴 ’를 돌려 무작위로 삶을 맞교환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연을 통해 공평하게 재분배하여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마르크 바라티에. 난 오늘밤부로 영원히, 당신에게 내 삶을 양도합니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말하면서 자신의 블랙박스를 내게 건냈다.
난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상자를 건네받고 대답했다.
“아르노 드몽탈, 난 오늘밤부로 영원히, 당신의 삶을 승계합니다.”(p. 154)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기회의 균등한 분배’ 정책에 의해서 주인공은 파리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인 아느로 드몽탈로써 두 번째 인생을 살게된다. 하지만 신분이 바뀌는 것은 본인뿐이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바뀐 남편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남편과 아버지의 너무도 갑작스런 변화.. 낯선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은 황당하지 않을까? 본인은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하지만,, 글쎄,, 정부 차원에서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이루어지는 삶의 변화. 누군가의 사적이고 내밀한 삶이 방송을 통해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송출된다. 과연... 부작용이 없을까?
인생 바꾸기에 성공한 주인공 마르크는 처음의 어색함을 뒤로하고 점점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면서 세컨드 라이프에 행복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과연 의문이다. 복지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현대 사회가 개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적이고 내밀한 개인의 삶에 국가 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지도 모른다.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할지도..... 어쨌든 마르크의 2번째 삶은 어떻게 이어질까? 어쨌든 다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 마르크는 행운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