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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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관록이 붙은 노련한 작가의 힘이 바로 이것인가? 책을 읽다가 이렇게 울컥해보기도 처음인 듯 하다. 사실 그 전에도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접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울면서 책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부터 < 도가니 > 까지 그녀의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꼬집고, 부조리한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메세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책은,,, 가슴을 울리는 거룩함이 있다. 그녀의 영적인 성숙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내가 세속에 정말 찌들려 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이성의 한계로는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오묘한 임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감동 그 자체였던 < 높고 푸른 사다리 > 안으로 들어가 본다.


요한 수사는 10년간의 수련을 견뎌내고 종신서원만 앞두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임하심을 존중하며 살아온지 어언 10년.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온 여인이 있다. 수도원장인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 그들은 서로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버린다.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소희와 하느님과 언약을 한 요한수사. 사랑의 마음을 억제해보려 노력하지만 이미 넘쳐버린 감정.. 제어할 수가 없다.



“ 왜 사랑하나요? ” 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옳다. “ 어떻게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요? ” 라는 질문도 문법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말들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 사랑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댈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한편, 요한 수사와 친했던 미카엘 수사는 수도원 내부의 삶만 알고 살다가 세속의 삶이 어떤 건지를 깨닫고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공장을 임금이 싼 베트남으로 옮겨버리고 함께 동거동락한 노동자 전부를 전원해고해버린다. 농성을 하고 있던 무리들과 함께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된 미카엘 수사에게, 수도원장인 아빠스님은 쿨파를 명령한다 ( 자기 반성을 위한 일종의 봉사활동 ). 냉철하고 논리적인 미카엘에게 약한 자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종교란 죽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이다.



“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 군. ‘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 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이 책은 요한 수사가 진리를 추구하는 와중에 겪어야했던 사랑과 고통을 통해서 그가 성숙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풀어낸다. 하느님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수사들은 서제서품을 받고 완전한 신부로 거듭나기 위해서 세속의 삶을 멀리한다. 그렇기에 세속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적 고통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 요한 수사는 교통사고 처럼 찾아온 한 여인과의 불같은 사랑과 갑작스러웠던 이별, 그리고 함께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던 수사들의 비참한 죽음 등을 통해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그는 삶이 이제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요한 수사는 방황하고 쓰러지려하고 하느님을 부정하려 하지만 주위에서 그를 잡아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런 식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그에게 임했던가?

공지영 작가의 삶은 평생 녹록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어려운 삶을 통해 한층 성숙한 것일까?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이 뿜어내는 성스럽고 거룩한 빛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자일 ( 아마도 ) 그녀가 품었을 것 같은 의문과 나름의 해답이 들어가 있다. 세상은 왜 권력자,강한 자 편에 서서 약한 자들을 억압할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거룩하지 않은걸까? 사람들의 신음과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이 자리 잡고 있을까?



책은 이제 < 높고 푸른 사다리 > 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실타래 풀듯 조금씩 풀어낸다. 요한을 사랑하고 아끼는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독일에서 한국까지 와서 공산당원들에 의해 온갖 고초를 겪은 토마스 수사님은 요한에게 무의미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 악 " 을 경계할 것을, 자신이 옥사덕 수용소에서 겪었던 요한 신부와의 일화를 통해 들려준다. 아기를 임신한 채 이북을 탈출했던 요한의 할머니는 흥남 부두에서 마치 구원처럼 자신에게 내려왔던 파란 그물 사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 지원을 위해서 갔던 뉴튼 수도원에 찾아온 마리너스 수사님은 한때 한 배의 선장이었고 1950년 흥남부두에서 수만 명의 피난민을 배에 태운 그 선장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퍼즐은 신비로운 신의 섭리에 의해서 조금씩 조금씩 맞추어진다. 인간 요한 수사가 고통을 겪은 것, 하지만 그로 인해 성장한 것, 미국에 와서 뉴튼 수도원을 이끌게 된 것 모두.. 인간은 알 수 없는 신의 사랑,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무의미의 고통이란 없는 것이다.


" 슬픔도 희석되고 실은 아픔도 아팠다는 사실만 남고 잘 기억되지 않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 젊음아 거기 남아 있어라,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아,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하늘에서 푸른 밧줄로 엮은 사다리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종소리는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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