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 시리즈 1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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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을 경멸해. 이게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야. 

 이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야.

난 당신을 경멸해. 당신 몸이 닿을 때마다 언제나 몸서리쳐졌어.

 진실을 말했어. 난 당신을 경멸해. 난 당신이 싫어!"

네오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 알려진 알베르토 모라비아 작가. 그의 작품은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잘 묘사한다고 한다. 이 작품 [ 경멸 ] 속에도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에밀리아를 바라보는 남편 리카르도의 절망과 좌절이 그의 독백에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열정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서 그런가?   감정 중심의 매우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표현이 인상적이다.

 

사랑은 그렇게 경멸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돌아왔다. 결혼 2년만에...

 

주인공 리카르도는 신문사에 글을 기고해서 받는 수입으로 아내 에밀리아와 근근이 살아왔다. 월셋집에서도 나름 행복하게 살아왔던 신혼커플. 그런데 리카르도는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아내 에밀리아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장만한다. 많은 액수의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감이 생긴 현재, 아내를 원망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런데 마침 바티스타라는 영화 제작자로부터 시나리오 의뢰가 들어오고 이제 집값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뛸 듯이 기뻐한다. 그리고 에밀리아가 행복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웬걸, 언젠가부터 냉담해진 그녀. 갑자기 각방을 쓰자고 하는데...

 

사랑하던 사람을 경멸하게 되는 계기는 뭘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닌 단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이 에밀리아의 내면에서 몰아쳤음이 틀림없다. 예전에 에밀리아는 리카르도에게 " 나는 당신을 미칠 듯이 사랑해요 " 라고 사랑고백을 했었다. 무엇이 이 부부를 사랑과 경멸이라는 극단과 극단을 오고 가게 만들었을까? 소설은 책의 중반까지도 명백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않은 채 독자들이 에밀리아가 그를 경멸하게 된 이유를 추측하게끔 만든다.

 

리카르도가 무리한 대출을 내서 아파트를 구입한 것도,

비싼 차를 산 것도,

바티스타의 시나리오 의뢰를 받은 것도,

다 에밀리아 때문인데,

리카르도라는 지구는 에밀리아라는 태양을 돌고 있는데,

그녀가 자신을 경멸한다니.

 

" 에밀리아는 마치 내게서 굉장히 먼 곳에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 미칠 수 없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49쪽)

 

" 에밀리아가 나를 더 이상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했다면 나는 아내를 떠날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믿기지 않을 만큼 괴로운 일에 맞닥뜨렸다 ." (73쪽)

 

"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마음이 불안했다.

마치 기하학 문제를 푸는 사람처럼 이성과 감성의 틈바구니에 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을 잠시 반성했다." (99쪽)

 

새롭게 영화를 제작하려는 바티스타와 함께 손을 잡고 시나리오를 쓰게 된 리카르도. 바티스타는 종교적인 영화가 히트를 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오디세이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감독 레인골드를 리카르도에게 소개한다. 그런데 그는 오디세이 내용에 대한 감독 레인골드의 독특한 해석을 듣고는 당황한다. 감독은 오디세이의 주인공 율리시스와 페넬로페의 심리적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난, 아내를 사랑했으나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한 남자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는 거니까."

 

영화 제작자 바티스타와 리카르도 그리고 에밀리아 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걸 모른채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마냥 에밀리아와의 문제를 붙들고 있는 주인공 리카르도... 책 속엔 소중한 걸 잃어버릴까봐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남자의 내면 묘사가 너무나 잘 그려졌다. 사랑과 절망에 대한 남성의 언어가 이렇게 짙은, 그리고 다양한 색깔로 표현될 수 있다니... 마치 한편의 어두운 시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영화로도 나와 있다는 책 [ 경멸 ]. 리카르도의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변화를 어떤 배우가 표현했을까? 꼭 한번 감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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