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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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 가슴이 먹먹하다. 완벽한 안갯속 혹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미궁 과도 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주인공 나카노와 그의 전 여친이었던 사야카가 다시 재회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부탁으로 숲속의 회색 집을 조사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비밀? 혹은 실마리.. [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이라는 제목 때문에, 시간의 뒤틀림 혹은 전생의 기억과도 같은 판타지스러운 내용을 떠올렸으나 이 책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7년 전 헤어졌던 전 여자친구 사야카를 만난 주인공 나카노. 오랜만에 만난 사야카는 그에게 지도 한 장과 황동 열쇠를 내밀면서 꼭 가봐야 할 장소가 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방문했던 집을 꼭 가봐야겠다는 사야카. 어리둥절해하는 주인공에게 사야카는 말한다. 나는 결함이 있는 인간이야... 나는 어린 시절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혹시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하며 한사코 그 집에 가봐야겠다고 주장하는 사야카.

외딴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 회색 집. 황동 열쇠로 현관을 열어보려 하지만 맞지 않는다. 하지만 집 뒤쪽에 있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문이 열쇠로 열려서 그들은 지하실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다.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집안.. 한동안 사람들이 산 것 같지 않다. 어두컴컴한 그 공간을 손전등에 의지하여 단서를 찾아다니는 그들. 그뿐 아니라 그 집은 한순간 일시 정지된 듯 하나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책의 발간 일은 모두 이십삼 년 전이고 모든 시계는 11시 10분에 맞춰져있던 것.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십삼 년 전에 시간이 멈추었다고 보기에는 어쩐지 수상하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2년 된 통조림과 그다지 낡은 것 같지 않은 집안 살림들 때문에.

이쪽 저쪽 방을 뒤지던 그들은 미쿠리야 유스케라는 초등학생이 쓴 일기와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쓴 편지를 발견한다. 그 일기와 편지에 쓰인 내용을 근거로 이 집에 살았던 가족에 대한 사연을 역추적하는 주인공과 사야카. 집안 살림을 그대로 둔 채 공중분해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유스케와 가족들. 나카노와 사야카는 일기와 편지를 토대로 주위 이웃들을 탐문하기도 하면서 회색 집과 집안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치 완전한 퍼즐에서 사라졌던 낱개의 퍼즐이 찾아지고 어느새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들!!!! 마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이 조금씩 밝혀지는 유스케 가족들과 그들에게 발생한 사건 그리고.... 경악할 만한 사야카에 대한 진실!

불행한 결혼생활이 문제였긴 했겠지만 사실 사야카는 딸을 학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했다. 딸만 보면 이상하게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자행한 학대.... 그 폭력의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기 전에 그녀는 원인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한 귀퉁이에 혹시나 딸에게 학대를 자행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던 그녀.. 역시 인간의 무의식은 모든 것을 다 저장해놓는다. 일그러진 것은 일그러진 대로....

추리소설의 거장답게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만한 복선들을 촘촘하게 책 속에 숨겨놓았다. 그걸 찾아서 해결하는 것은 주인공들의 몫 혹은 독자들의 몫?? 주로 유스케의 일기와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서 진상을 파악했던 주인공 나카노와 사야카. 그 자료 속엔 사건의 단서가 되는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복잡한 암호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처럼 숨겨진 채로. 날카로운 추리력을 지닌 나카노와 희미하지만 그 집에 대한 약간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야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결국은 해결한다. 유스케와 그의 가족 그리고 사야카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어두컴컴한 미로 속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더듬더듬하며 단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던 책 [ 옛날에 내가 죽은 집 ].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거나 잔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궁금증을 자아내는 구성이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고 번역이 잘되어서 그런지 가독성도 꽤 높았던 책이었다. 최근 봤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재미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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