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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은모 옮김 / 달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위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마음속 깊이 속죄를 하고 있다면 용서받아야 마땅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당한 고통을 평생 짊어지고 비난받으며 살아가야 할까? 야쿠마루 가쿠 저자는 신작 [ 우죄 ]를 통해서 이러한 무거운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사실 우리 옛말에도 [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남들을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마땅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터넷을 잠시만 검색해봐도 요즘 발생하는 사건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다. 용서할 수 있는 죄도 범위와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야쿠마루 가쿠는 본인의 작품에서 특히 소년범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 소년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주위에 그런 케이스를 많이 본 건지 어쨌든 어릴 적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일본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잔인한 청소년 범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다. 그 당시에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무엇 때문에? 무엇이 모자라서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 [ 우죄 ]에서도 청소년 시기에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누가 보기에도 잔인한 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죄를 저지른 경우이다. 둘 다 과거에서 달아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 시달리고 있으니. 역시 인간에게는 양심이란게 있긴 있는 모양이다. 주위에서 단죄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단죄하니까.
이 책의 주인공 마스다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나 여러 번 입사에 실패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에 놓이자 가까운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게 된다. 이 회사는 기숙사가 있어서 지낼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스다와 함께 입사한 스즈키라는 사람은 왠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교적인 마스다 덕분에 점점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되는 스즈키.
그러던 어느 날 기계로 금속 가공 작업을 하던 마스다가 손가락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고 마침 곁에 있던 스즈키가 재빨리 손가락을 주워서 처치를 해주는 덕분에 손가락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스다와 스즈키는 마치 어린 시절에 만난 친구처럼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특히 스즈키는 마스다가 해준 한마디 덕분에 그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죄까지 고백하려 한다.
" 왜 마스다 씨에요? "
" 내가 죽으면 슬플 거라고 말해줬으니까"
" 처음이었어..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난 늘 외톨이였거든. 내가 저지른 죄에 시달리면서도 아무에게도 그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었어. 내가 살든 죽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아니, 내가 죽으면 기뻐할 사람은 많겠지. 하지만 난 죽지도 못하고 그저 죽을 곳을 찾아 헤맸어.... 그때 마스다가 그렇게 말해준 거야 " 스즈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 302쪽 )
하지만 역시 과거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죄값을 다 치루고 나온 스즈키이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꺼지지 않았다. 어릴 적 저지른 잔악무도하고 끔찍한 사건 때문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스즈키의 사진과 스즈키가 가지고 다니는 사진을 유심히 비교해봤던 마스다는 그가 유명한 소년 범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알아낸 순간 그에게 뻗어오는 여러 황색 언론들의 마수들. 선정적인 주간지 등에서 스즈키를 주인공으로 한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낼 것을 마스다에게 요청한다. 거금의 사례비를 제시하면서....
과연 마스다는 친구 스즈키를 배반하고 그의 이야기를 잡지에 실을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스즈키는 또 부평초와 같은 삶을 살아야한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평생을 그렇게 사는게 마땅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든다. 어린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부모들의 피눈물을 생각해보면. 주인공 마스다는 자신의 경솔한 판단으로 친구를 잃은 안타까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갈등하는 그의 내면을 보면서 내가 마스다 입장이라도 참 결론 내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한편으로는 [ 속죄, 희망 ] 등과 같은 밝은 이미지를 마음 속에 그릴 수 있었다. 판단력이 모자란 청소년기에 범죄를 저질렀긴 하나 마음 깊이 뉘위치고 있는 스즈키. 그리고 그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조직단체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죄는 참혹하고 이미 저지른 죄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용서하고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 책속의 사람들은 노력한다. 범죄자가 다시 태어나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단순 재미를 위한 추리가 아니라 속죄와 용서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깊이 있는 책 [ 우죄 ]. 마음 속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