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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다.”
영화 [ 이터널 선샤인 ] 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짐 캐리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삭제한다. 한 기억 삭제 회사가 이별의 아픔을 견딜 수 없던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서 그들의 기억을 지워주는데, 내 마음 속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이미지가 있다. 지워지지 않으려 애쓰며 도망치던 기억 속의 가상의 연인들,,, 그들의 슬펐던 뒷모습에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이 책 [ 너의 이야기 ] 도 기억을 다루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기억의 삭제
이외에도 기억의 가공이라는 주제도 포함된다. 표지 속 아름답지만 슬픈 표정을 가진 소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는 이리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기억을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미래가 배경인 소설 [ 너의 이야기 ].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가꾸기 위해서 기억을 조작하거나 삭제한다.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책 속엔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공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의억가공사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기억 삭제나 조작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읽어보고는 나노로봇을 이용해 그들에게 맞는
기억을 만들어주거나 아니면 아예 삭제해준다.
먼저 책에 나오는 용어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의억 : 나노로봇에 의한 기억 개조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
의억가공사 : 의뢰인들의 ' 이력서 ' 들을 토대로 가공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전문인력
그린그린 :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이 들어있는
알약
레테 : 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주는 나노로봇이 들어있는
알약
주인공 치히로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기억을 조작해서 살아간다. 아버지의
경우는 있지도 않았던 다른 전처들과의 멋진 신혼여행에 대한 기억을 구매하고 어머니는 없었던 자식들과의 추억을 구매한다. 조작된 기억에 의지해
살아가는 부모에게서 아무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은, 친구도 없었고 당연히 어린 시절의 추억도 없다. 텅빈 유년 시절을 보낸채
어른이 되어버린 치히로는 자기의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6세부터 15세까지의 기억을 전부 삭제하기 위해서 ' 레테 ' 구입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의억이라는 것은 몽상보다 좀 더 현실적인 ‘최선의 가능성’이란
형태를 취한다.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어났으면 하는
일.”(p.163)
그러나 ' 레테 ' 가 아닌 실수로 배달된 ' 그린그린 ' 을 복용하게 된 주인공.
기억이 사라지기는 커녕, 도리어 소꿉친구인 그녀 - 도카 - 와의 가짜 기억이 심어지게 된다. 새하얀 피부에 아름다웠던 그녀와의 행복했던 유년기
시절의 기억.. 비록 가짜 기억이지만 그 속에서 너무나 행복했던 주인공 치히로는 존재하지도 않을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기억 속에만
존재해야할 그녀가,,,,,, 주인공의 현실에 나타난다?! 가공된 기억 속 친구라고 생각했던 도카가 현실에 나타나다니,, 그것은 의억이 아닌 진짜
기억이었던 것일까?
기억의 가공과 삭제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보다. 그런데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야하는 여주인공 - 도카 - 보다, 가공된 기억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더 불쌍해보였다면... 내가 이상한가? 그들은 하나같이 영혼없이 살아가는 인형같아 보였다.
그러나..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니,, 웬지 끌리는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 ' 레테
' 를 복용할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지울까? ... 물론 좋았던 기억을 남겨두고 불행했거나 아팠던 기억은 다 지우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가상의 기억을 심거나 존재했던 기억을 삭제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전에, 영화 [ 매트릭스 ] 를 보고 컴퓨터가
심어준 가상의 공간에서 스테이크를 썰지, 아니면 현실을 자각하고 깨어난 상태에서 누룽지 국물 (?) 같은 음식을 먹을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
아무도 권유한 적이 없는데도 .. ) 역시 누룽지 국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진짜니까.
영혼이 없는, 버려진 인형 같은 사람들과 그들의 텅빈 공간을 채워주는 의억가공사
그리고 기억의 조작과 삭제 이야기를 다룬 [ 너의 이야기 ]. 가공된 기억이라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만일까? 아니면 가공된 기억은 그냥 가짜에
불과한걸까? 만들어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 그녀 " 가 현실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룬 [ 너의 이야기
]..... 생각지 못했던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