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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김지우 지음 / 홍익 / 2019년 5월
평점 :
작가의 이 문장이 내 마음 속에 내려앉는다. 공감한다고 말하며 작가를 안아주고 싶다. 태어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 나의 이름이 내게 안겨주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이미지를 들여다보다가 분노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가끔은 좌절하기도 한다.
김지우 작가의 단편 소설집 < 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 에는, 이름이 웬지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번째 이야기 < 메데이아 러닝 클럽 > 의 주요 화자 아영은 언제나 아영일 뿐이었다. 임용고시에 떨어진 뒤 지금의 아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곰곰히 생각한 그녀는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한다. 친구 이선, 세화, 그리고 임용 고시를 준비하다가 만난 주라는 남자와 함께.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은 순간, 웃음과 기운을 안겨준 친구들과 함께 떠들고 웃던 그 순간,,,, 아영이를 갉아먹던 벌레가 입 속에서 튀어나오고 비로소 그녀는 진짜 아영이가 된다.
" 아영은 중얼거리며 황금빛 구름과 구름 아래 잠실대교와 다리 가득 마라톤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이선과 세화 그리고 주,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 46쪽
두번째 이야기 < 완벽한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 >
유리는 아내의 도리에 집착한다.
" 결혼한 자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중요한 경전 하나가 있지. 아내의 도리 제 1장 1절, 아내는 가족 구성원에게 매 끼니 요리를 척척 해줄 줄 알아야 한다 "
유리는 요리에 능숙한 아내라는 이름에 집착한다. 그러나 뭐든지 제거하는데 능숙한 이 여인.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려다 그만 미역국을 학살해버린다... 요리 학살자라는 별명답게.
" 유리의 도리 제 1장 1절,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 ( 57쪽 )
이제 요리는 좀 못해도 청소와 정리 그리고 교정 작업을 잘하는 사람, 유리라는 이름에 만족할 수 있을까?
" 나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 라는 작가의 문장에, 나는 깊은 공감을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한숨이 나올 때마다 나도 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름은 하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상징할 수 있다. 관계라는 면에서는 누군가의 부모, 자식, 연인, 친구.. 를 나타내기도 하고 사회의 조직에서는 어떤 책임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가 느낄만한 미완성의 느낌이 자신의 이름에 담겨있지 않을지..... 아영이가 다른 아영이가 되고 싶어했던 것처럼.
작가는 소설가로 불리고 싶다 한다. 나도 예전엔 불리고 싶은 이름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진정으로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딱 1명, 아니 한 2명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이 매우 담백하고 깔끔해서 잘 읽히는 소설집이다. 단편 외에도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곧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