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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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를 조금 바꿔봤다. 책 읽는 내내,,,, 이 노래 가사가 머리에 맴돌았다. 희한하게도 나는 책을 읽다보면 내용과 관계되는 노래가 머릿속에 맴돈다. 격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20대 젊은 아일린을 묘사하기에 매우 적절한 가사가 아닐까? 싶다. 표정없는 무뚝뚝한 얼굴 ( 그녀는 데스 마스크라 부른다 ) 아래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고 살았던 아일린. 그녀의 젊은 시절은 우울과 몽상 그리고 분노로 점철된 하루하루였다.


이 책은 삶에 여유가 생긴 노년의 아일린이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쓴, 일종의 회고록같은 책이다. 수십년 전의 일을 다루다보니, 별로 좋진 않았더라도, 기억 속에 남는 결정적인 시기를 포착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뇌는 신기하게도, 행복했던 시절보다는, 힘들고 억울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시절을 더 잘 기억해낸다. 노년의 아일린은 정신적으로 아팠던 젊은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포착해서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놓는다.


사실 젊은 날엔 격한 감정에 휘둘리기 쉽지만,,,,, 주인공 아일린의 분노와 자기 혐오는....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에 찔려 죽거나, 아버지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는 상상을 하는 아일린. 그녀를 저렇게 뒤틀리게 만든 것의 정체는 무얼까? 궁금했다. 책 읽기 좋아하는 명민한 ( 내가 보기에는 ) 그녀가 왜 자기 혐오라는 끔찍한 병에 걸리고 만 것일까?...


그녀의 공상 사이사이에 가끔씩 등장하는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언니처럼 예쁘거나 발랄하지 않은 아일린에게 가해지던 정신적 학대가 보였다.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다친 아일린을 못 본 척하고 문을 닫아버린 어머니와 주섬주섬 다친 몸을 끌어올려 숨 죽인 채 누워있던 어린 아일린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왜곡된 자화상을 가진 젊은 아일린을 만든 정체가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했다. 우울과 분노, 욕망과 좌절, 몽상과 초라한 현실에 둘러싸여,, 폭발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젊은 아일린의 정체가.....


20대의 아일린은 무어헤드라는 청소년 교도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다. 친구가 별로 없는 그녀 곁에는 매일 술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는 예전에 돌아가셨고 언니는 고향을 떠나버린지 오래이다.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술 시중을 들면서 살고 있는 아일린. 즐거움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제로인 이 고향에서의 삶에서 출구를 찾고 싶어하는 아일린. 자살충동과 살인충동을 일으키는 아버지 곁을 과연 아일린은 떠날 수 있을까? 마음 먹었다가도 다시 주저앉고 마는 이 쳇바퀴같은 삶에서 아일린이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일린은 수줍음많고 내성적이지만 동시에 거칠고 분노로 가득차있다.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우울함과 동시에 자기 혐오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그녀.....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상하게 그녀의 어두운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삶에 빛과 어둠이 있다면, 아일린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어둠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

친구가 없는 아일린이 1인칭 화자로 서술하는 소설. 그런데 지루하지 않고 꽤 재미있었다. 속사포처럼 자신의 불행을 쏟아내는 아일린. 그러나 그녀의 불행이 진짜 불행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감추려고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건조한 문체로 남 얘기하듯 불행을 이야기하는 태도 때문이었을까? 만약 영화로 만든다면, 개성 강한 여배우가 아일린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것 같다. 데쓰 마스크,,, 즉 무뚝뚝한 표정 아래 많은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20대 젊은 날의 신경증과 불안, 그리고 자기 혐오를 재기발랄한 문체로 표현한 [ 아일린 ].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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