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삭줍기 환상문학 1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환상 문학을 만날 때마다 현실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상상력 뿐 아니라, SF나 환상문학은 비유와 상징이라는 틀 속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감추어져 있어서 그것을 들춰내는 재미도 쏠쏠하게 있다. 이 책 " 그림자를 판 사나이 "도 단순하게 바라봤을 땐, " 악마 " 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서 평생 고통에 시달린 남자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한층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당시 자본주의에 점점 물들어가는 독일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어린 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친구인 " 샤미소 " 에게 자신이 평생 겪은 진기한 일들을 편지에 써서 보낸다.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 페터 슐레밀 " 은 인사차 들른 욘이라는 부자 친구의 집에서, 독특한 인물을 만난다. 회색 옷을 입은 그 사나이는 주머니 속에서 고급스러운 물건들 - 터키 양탄자, 아름다운 경주말, 망원경 .. 등을 꺼내면서 손님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호기심이 동했던 " 슐레말 " 은 회색 남자를 찾아헤매고, 문득 마주친 그들... 회색 남자는 그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그의 그림자를 사겠노라고..

“ 당신 스스로는 그 점을 알고 계시지 못하겠지만, 빛나는 태양 아래서 당신은 고상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아주 멋진 그림자를 자신 발밑에 드리우고 계십니다. 제가 주제넘은 추측을 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에게 당신의 그림자를 넘겨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

회색 남자의 거래 조건은 바로, 그에게서 그림자를 사는 대신, 금화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머니를 주겠다는 것. 처음엔 이 괴상망측한 거래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던 " 슐레말 " 은 물질적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팔게된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통의 나날들..... 사람들은 그림자없이 돌아다니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돌멩이를 던지지 않았을 뿐,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라는 뭇매를 맞게되는 슐레말은 그때부터 바깥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된다. 밤에만 다니거나 아니면 자신의 충실한 하인인 벤델을 앞세워 그의 그림자를 대신 빌리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나는 회색 남자에게 자신의 " 그림자 " 를 팔아넘긴 " 슐레말 " 을 보고 영혼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떠올렸다.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전통적인 인본주의 사회에서 막 물질을 추구하는 삶으로 변천되어가던 근대 독일 사회에 우후죽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어서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대신, 명예를 잃고 손가락질 당하던 인간들을 보며 작가가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의 모티브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실제로 " 슐레말 "은 회색 남자에게서 나중에 영혼까지 팔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림자를 돌려주겠다는 회유와 함께. 사실 그림자가 없어서 결혼까지 파탄난 슐레말에게 그것은 솔깃한 유혹이었을 수는 있지만 그는 그 부분에서는 딱 잘라 거절하고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대륙과 바다를 자유롭게 가로지를 수 있는 장화를 신은채, 동아시아, 호주, 남아메리카 등등... 온 세상으로 다니며 자연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로 살아가는 " 슐레말 ". 혹독한 인생의 교훈을 얻고는 마지막에는 은둔한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처럼 보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전개 아래에 숨어있는 메세지가 많아서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았던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주인공은 한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유증을 두고 두고 겪게 된다. 인간의 본래 모습을 저버리고 ( 그림자를 팔아버림 ) 물질적 욕망을 추구한 탓에 평생 태양을 등지고 살아야했던 슐레밀. 자본주의 사회로 변해가던 당시 독일 사회를 상징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만에 순수 환상 문학을 읽게 되어서 신선하고 새로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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