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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신영복 -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을 읽는 10가지 키워드
이재은 지음 / 헤이북스 / 2019년 3월
평점 :
“ 머리가 이성적인 영역이라면, 가슴은 공감의 영역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 전두엽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라 ’ 고 말하지는 않는다. ‘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 ’ 고 한다. ”
{ 신영복, ‘ 시민학교 특강 ’에서 }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 선생님이 남기신 유작을 정리한, 즉 선생님의 사상과 사유를 뽑아서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책을 읽었다. 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실천, 자유, 차이, 공존, 화화, 공부, 존재, 연대, 변방, 관계 ’ 저자 이재은님은 각각의 키워드를 소개하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서고금의 문학, 역사, 철학을 끌어와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풍성한 해석을 덧붙였다.
사실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시대가 처한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자신의 앎을 직접 실천하면서 살아가신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런데 책을 찬찬히 읽어보니, 선생님이 제시하는 올바른 삶이란 “ 존재 ” 로부터 “ 관계 ” 로 나아가는 삶이 아닌가 싶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모든 키워드를 아우르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 함께 하는 삶 ” 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 우리는 언젠가부터 뿔뿔이 흩어지고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처럼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순간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살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영복의 사상은 더 빛이 나고 값집니다. " ( 21쪽 )
책 속에 등장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은 하나하나 마음 속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보통 ' 여행 ' 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 여행 ' 은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연대, 즉, 공동체 속의 다른 사람에 대한 ' 공감 ' 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신영복 선생님이 평소에 강조하신 ' 여럿이 함께 ' 가 바로 그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 것 같다.
"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신영복의 생각은 ' 새로운 시작 ' 과 '변화' 로 귀결됩니다. 사실 차이와 다양성은 분리 불가능한 말입니다. 다양하다는 것 자체가 차이를 내포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작과 변화도 분리될 수 없는 말입니다. 변화없는 새로운 시작은 없고 새로운 시작없는 변화도 없습니다. " ( 67쪽 )
우리는 의식과 사고가 다를 것 없는 환경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러다 보면 서로 다름은 사라지고 같음은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움을 갈망하게 되는데, 새로움에 대한 불안과 불편함 때문에 현실에 고정되어 살아간다.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실행하지 못하고 만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제시한다. 그는 낯선 환경에 자신을 밀어놓다보면 새로운 발견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라고 말한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수용하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의 쟁점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이슬람교를 따른다고 하여 폭력적 성향을 띄고 있을 거란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난민을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앎과 삶을 일치 통일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난민에 대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자명하다. 위기에 처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너무나 편협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끌어안는 철학과 자세가 필요한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신영복 선생을 ‘ 이 시대의 의인 ’, ‘ 진짜 어른 ’ 이라고 말한다. 나이 스물 여덟에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 20일의 억울한 수형 생활에도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살아간 절제와 성찰의 삶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큰 고통 속에서도 본인의 깨달음을 진솔한 언어로 이 사회에 전달하는 그는, 양심적으로 시대를 살아간 정직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따라서,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을 새롭게 읽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그의 사상의 핵심만 모아놓은 해설서이고 입문서인 것 같다.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을 처음 대하는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나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