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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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런 문체를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나? 이 소설은 d 라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물 흐르듯, 독자들에게 영화처럼 보여주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목공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d는 내심 그를 무시한다. 형편없는 솜씨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이 신성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아버지. 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밥벌이니까.... 그러나 d는 그런 아버지를 혐오스러워한다. 고요와 평화를 좋아하는 d에게 있어 아버지의 일은 소음만을 일으키는.... 그냥 노동에 불과하다.

이렇게 냉소적이었던 d는 삶에서 신성함을 발견한다. d를 둘러싼 환경은 변한 것이 없으나 d로 하여금 삶의 신성함을 발견하게 만든 주인공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dd. 그전까지는 그 무엇도 아니었던, d의 삶은 dd를 만나면서 신성한 것이 된다. d는 사랑만이 인간을 존재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다.

18쪽

"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를 이따금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

그러나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dd는 한순간 d의 삶에서 사라져 버린다. dd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d. 어느새 차가웠던 사물들은 누군가가 ( 정확하게는 dd가 ) 남기고 간 미지근한 온기를 띈다는 사실을 느끼며, d는 차가워진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dd의 부재로 인해, 마치 사나운 적의 공격을 받고 집 안으로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는 달팽이처럼, 그는 그렇게 숨어있다. 미지근한 온기를 가진 사물들의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여기에 여소녀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전자 제품 수리공이 있다. 그는 세운 상가의 5층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 곳은 이제 여소녀를 비롯한 몇 명만이 남아서 그 명색을 유지할 뿐이다. 그도 앞서 말했던 d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는데 당연히 d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튼튼하게 유지될 거라 믿었던 자신의 치아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세운상가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이 상가를 기반으로 했던 자신의 삶에도 천천히 균열이 일어남을 느낀다.

69쪽

이것은 망가지지 않는다. 자신있게 말하는 인간은 더러 보았지만 (... 중략 ...) 여기 사람들은 그저 망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중략..) 그러나 여기 이렇게 균열들이 있다. 멀쩡하다는 것과 더는 멀쩡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앞면과 뒷면일 뿐. 언젠가는 뒤집어진다.믿음은 뒤집어지고, 거기서 쏟아져 내린 것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지저분해질 것이다.....

무너져가는 삶의 터전으로 인해 상실감을 느끼는 여소녀와 소중했던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구토와 환멸을 느끼는 d가 우연히 소통을 하게 되고, 이상하게도 접점을 느끼는 그들. 고아처럼 내던져진 d에게 여소녀가 손을 내밀었다고 보면 될까? 여소녀의 눈에 d의 쓸쓸함이 보였나보다.

이 소설 [ dd의 우산 ]을 읽으며, 사람들의 삶이 가엾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소설은 내내 그들 눈에 비치는 이 세상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어두운 상가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문득 저승을 떠올리는 여소녀, 그리고 dd가 없는 이 세상에서 매일 죽음을 떠올리는 d. 비를 맞고 있던 d에게 선뜻 자신의 우산을 빌려주었던 dd의 따뜻한 마음과 대비되는 바깥세상의 차가움 그리고 세상을 다 산 듯한 사람들의 느린 움직임.

[ 디디의 우산 ] 은 절벽으로 내몰리는 듯한, 아니 이미 내몰린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여소녀의 작업실 한 구석에서 dd가 남기고 간 레코드로 음악을 듣고 있는 d.... 그는 생각한다. 모두 누군가를 잃으며 살아간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d는 그 와중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거라고.. 덧없고 덧없고 덧없는 삶이지만 음악을 듣는 행복한 찰라의 순간을 찾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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