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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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일상을 나누었던 누군가가 사라진다. 함께 잠들고 깨어나던 침대 옆 자리는 비어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실감 속에서 남은 나날들을 살아가야 한다.

톰 말름 퀴스트의 자전적 소설 [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죽음과 탄생에 대한 경험과 성찰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가벼운 페렴 증상을 가진 줄 알았던 여자친구 카린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는 곧이어 위중한 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녀가 중병에 걸리고 곧이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에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주인공, 톰. 신은 주사위를 던졌고 그에게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이라는 잔인한 운명을 안겨준다. 차가운 병실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수 밖에 없는 톰,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카린을 사랑하던 이들, 그녀와 톰의 부모님, 친구들, 모두 병원에 함께 와서 톰의 아픔을 같이 한다.

소설은 이상하리만치, 담담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평생을 함께 하리라 약속했던 연인의 죽음 앞에 무너지는 통곡의 소리도 없고 좌절의 움직임조차 없다. 톰은 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그녀의 모습과 치료진의 노력을 자세하게 그리고 절제된 감정으로 묘사한다.

냉정한 서술이지만, 사실 그 아래 슬픔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그의 모습이 언뜻 언뜻 보인다. 더러워진 운동화에서 풍기는 냄새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톰.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 스테판이 운동화를 빨아서 널어준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독자의 눈에 비치는 스테판의 행동은 얼마나 사려깊은지.

카린은 죽어가지만 그들의 아기는 무사히 탄생한다. 리비아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딸은, 어머니인 카린을 닮아서 입술이 봉긋하게 튀어나왔다. 톰은 리비아의 사진을 카린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의식을 상실한 상태이다. 지친 듯 쭈그려 앉아있는 톰에게 의사가 다가와서 말한다.

“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지금 남편 분처럼 저도 그저 앉아 있기만 했죠. 지금은 딱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첫째, 잠을 잔다. 제대로 자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둘째, 먹는다. 먹는 걸 잊어버리면 기운을 낼 수 없습니다. 셋째, 최대한 자주 병원을 벗어난다. 그러지 않으면 점차 머리가 이상해질 겁니다 ”

너무도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똑같은 일을 겪은 동지로써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인 것이다.

결국 카린을 잃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톰. 목사님과 장례식을 준비하며 상의를 하는 동안, 카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해 내뱉는 톰의 말.

“ 카린 덕분에 저는 제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상냥함은 카린의 장점들 중 하나였습니다. 누구든 죽을 수 있지만 카린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죽었어야 해요. 지금 여기에 카린과 리비아가 있어야 하는 건데, 카린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카린을 사랑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그녀만큼 사랑하는 딸이 생겼다. 언제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리비아를 위해서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톰. 그러나 문득문득 올라오는 카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마치 그녀가 한 때 존재했었던 사람이었다는 증거를 찾듯, 톰은 그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을 하나하나 건져올린다. 그녀와의 만남부터 말다툼 그리고 카린이 리비아를 임신하고 스크런치라는 태명을 붙여준 기억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낯선 자의 방문이라기 보다는 우리 주위에 항상 머물러있던, 그러나 눈에 띄지 않았던 친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뿐이라고. 하지만 막상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닥쳐오면, 우리는 당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마치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처럼.

[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 ] 의 작가, 톰 말름퀴스트는 자신이 겪은 연인의 죽음에 대해 절제된 감정으로, 아픔을 토로하는 글을 적었다. 글의 첫 부분부터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휘둘리는 듯한 주인공과 가족들의 힘겨운 모습이 보인다. 사실 언젠가는 겪어야할일이지만 여전히 아프기만한 누군가의 죽음. 그러나 죽음이 있으면 탄생이 있는 법.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딸 리비아를 출산하는 카린. 절망의 가운데에서 기쁨을 맛보는 주인공이다. 카린을 떠나보낸뒤 리비아를 위해 살아가는 주인공.

"나는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햄셰프에서 장을 보고, 유모차에서 장 본 물건들이 든 봉지를 묶고 배낭에 채소와 과일을 넣고, 요리를 하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를 어깨에 앉히고 아이에게 말을 건다. 아이는 유머감각이 있고 많은 단어를 알게 되었지만 아직 발음은 서툴고 텔레토비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를 더 좋아한다 '

작가는 상실과 슬픔이 그리고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묵직한 슬픔을 안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내는 작가를 보며, 독자들도 가슴 속 차오르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전부였던 연인을 잃어버렸지만 또다른 전부가 생겼다. 이제 그녀를 위해 살아가는 주인공. 서툴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을 보며 독자들은 마음으로 응원을 하게 된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책 [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오늘 절망스러운 하루를 보낸 모든 독자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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