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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닥의 머리카락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1
구로이와 루이코 외 지음, 김계자 옮김 / 이상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나는 추리 및 스릴러와 같은 장르 소설을 즐긴다. 물론 호러 소설도 좋다. 그러나 추리 소설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 같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머리 좋은 탐정이나 형사들이 나오는 추리물들은, 나에게 " 논리 " 를 통한 " 문제의 해결 " 이라는 짜릿함을 안겨준다. 그 뿐 아니라, 추리 소설을 읽고 나면 웬지 정의를 구현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 장르물이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게 문제이다. 일본의 추리 소설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만큼 작가층도 두텁고 따라서 그 장르가 훨씬 더 발전된 것 같다. 왜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발전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이 [ 세 가닥의 머리카락 ] 이라는 단편 추리소설집에 나와 있는 듯 하다.
일본은 1880년대 후반,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추리소설을 번역하고, 그 번안물을 일본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이 바로 그 당시 번안된 작품들이다. 이 책의 대표작인 [ 세 가닥의 머리카락 ] 의 저자 구로이와 루이코는 이 외에도 영국 소설가 휴 콘웨이가 쓴 [ 어두운 나날 ]을 번안하여 [ 법정의 미인 ]을 써냈고 [ 유령 ] 이라는 단편도 그의 번안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 뿐만 아니라, 내가 청소년 시절에 읽어본 작품들인 애드가 앨런 포의 [ 검은 고양이 ], [ 모르그 가의 살인 ] 등도 번안이 되어서 실려져있었다. 원본 [ 검은 고양이 ] 를 읽으며 느꼈던 살기와 어두움이 그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져서 소름이 확 끼쳤다. 옛날식 문체로 번안된 작품이었으나, 금방 몰입이 되는 걸 보면 역시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대표작인 [ 세 가닥의 머리카락 ], 매우 흥미로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주인공들은 노련한 사복형사 다니마다와 신참 오토모군이다. 다니마다 형사는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는,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수사하는 듯 보이는 타입이다. 그에 비하여 오토모군은 증거품을 매우 꼼꼼히 관찰하여 분석한 후 결과를 도출해내는 타입이다. 전형적인 법의관 타입이 오토모군이라면, 행동대장 타입은 다니마다 경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너무 다른 개성을 가진 탓에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사건 능력에 있어서만은 그 누구도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다.
어느날 강변에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 하나가 발견되고, 노련미를 바탕으로 자신의 직감에 따라 범인을 추적하는 다나마다 형사. 반면 시체에서 발견된 세 가닥의 머리카락을 비교 분석하여, 거기서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오토모. ( 개인적으로는 오토모의 방식이 마음에 듬 ), 오토모에 비해 얼렁뚱땅 수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나마다가 스토리 내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긴 하나, 결국 범인을 동시에 찾아낸다. 놀랍다!
1880년대 후반에 지어졌으니, [ 세 가닥의 머리카락 ] 은 현대 추리소설의 고조 할아버지 쯤 되는 격이다. 그렇다보니 읽기 전에는 너무 어렵거나 고리타분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아무래도 옛날 추리 소설이다보니 현대물만큼 세련되거나 복잡한 트릭을 갖추진 않았으나, 단순하고 간결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주인공들의 개성이 살아있었으며,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일본 추리 소설 매니아들이 읽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등도 어쩌면 이런 추리 소설들을 읽고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탄이 나올 만큼 꼼꼼하게 단서를 분석하던 [ 세 가닥의 머리카락 ] 의 주인공 오토모의 얼굴과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속의 몇몇 인물들의 얼굴이 겹쳐보이는 것은 왜일까? 주위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