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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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을 듣고 절망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럼 듣고 절망하되 다시 일어서라 " 라고 말하는 듯 한 이 책.  점선의 영역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들은 운명에 휘둘리는 존재였다.  불사신으로 묘사되는 신들은 신전에 모여 인간들에게 신탁을 내리고, 무력한 인간은 불길한 운명을 애써 부정하며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신탁이 내린 운명의 저주에 붙들린다.

이 책의 주인공도 신이 내린 불길한 신탁에 맞닥뜨린다.  그의 할아버지는 신이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 불리는  신.  살아계실 때 그는 몇 번이고 가족들에게 불길한 신탁들을 내렸다.  그때마다 가족들은 몸서리쳐지는 운명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을 만날 것이다.  소중한 걸 잃어버릴 것이야.  용기를 잃지 말아. 도망치면 안돼 "

정신줄을 살짝 놓은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내린 신탁.  지금까지 할아버지의 예언이 틀린 적이 없었기에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점선의 영역이라는 이 책에서, 저자 최민우는 그리스 신화 코드를 차용하여 책 속에 살짝  심어놓는다.   오이디푸스가 그랬던 것처럼, 일찌기 신탁으로 정해진 절망적인 운명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주인공.  의연한 듯 대처하지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예언을 잊고 살던 주인공은 여자친구인 서진의 그림자 분실사건을 계기로 그것을 떠올린다.  서진은 모멸적인 취업활동 이후 자신의 그림자를 분실하고 만다.  

그림자는 도시 곳곳을 떠돌며, 자신이 가진 파괴적인 힘으로 정전사태를 일으킨다.  서진의 분신이기도 한 그림자는, 그녀의 분노와 증오의 에너지를 품은 채 자신을 절망으로 이끄는 도시를 파괴하고자 하고,  어둠의 에너지를 없애버린 서진은 점점 빛처럼 투명해지는데....

저자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살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움  ( 사회 속에서 느끼는 부당함? 교과서와 일치하지 않는 사회?  매우 불완전한 사회 시스템 ) 과 삼포세대로써 느끼는 절망감 등을 판타지적 요소를 이용하여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도시의 정전사태와 지하철 경로이탈 사태와 같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할 것 같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사고와 상황들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두 주인공 젊은이가 살면서 느끼는 불안함을 나타내는 듯 하다..

주인공은 이미 신탁을 받아 운명이 정해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는 마치 벼랑 끝에 놓인 것처럼 팍팍한 삶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만다.  ( 현실을 나타내는 빛과 그림자 중에서 그림자를 놓아버림 )  그러나 저자가 결국 말한다.  우리의 삶은 선이 아니라고.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고...   비록 힘겨워도 운명이라는 점을 찍어나갈 수 있고 방향 설정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 새옹지마 ] 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 점선의 영역.   엄청 재미있는 동시에 많은 토론 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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