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아직 읽지 못하고 영화로 먼저 봤습니다. 간단한 감상입니다.


1.

영화 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ꡕ은 이야기의 소통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 몇 권을 나올 것이라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푸념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물과 같다. 이야기는 막힘없이 흘러야만 한다. 이야기는 소통(疏通)을 위한 것이다. 이야기가 억눌리고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한(恨)이다. 한은 억눌린 이야기, 소통되지 못한 이야기이다. 우리네 옛 어머니들이 할 말이 있어도 차마 말로는 못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탕 탕 치는 이야기가 바로 한이다. 


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ꡕ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문유정(이나영 분)이란 여자, 강윤수(강동원 분)란 남자의, 서로 전혀 다른 배경과 줄거리, 화법과 뉘앙스를 지난 이야기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넘나들면서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2.

대내외적인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상담이란 행위에 의존하곤 한다. 상담이란 문자 그대로 상담(相談)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나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야기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소통(疏通)이다. 나의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가 서로 소통될 때, 내가 당신을 구원하거나 당신이 나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다.


15살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유정은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만 이기적이고 허영심 많고 남들의 이목과 체면을 중시하는 어머니에게 묵살 당한다. 자신을 강간한 사촌오빠보다 어머니를 더 증오하게 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고, 그 후로 두 차례 더 자살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살아남아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앞 못 보는 어린 동생과 자신(윤수)을 고아원에 버린 엄마를 어렵게 찾아간 어느 겨울날, 엄마는 자기도 살자며 윤수 형제를 문전 박대한다. 그 길로 형제는 앵벌이와 노숙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전직 가수였던 유정이 야구경기에서 불렀던 애국가를 제일 좋아했던 윤수의 동생은 어느 날 아침 싸늘하게 얼어 죽는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라고 말했다. ‘여성적인 것’의 다양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바로 모성이 아닐까? 우리는 남과 여,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상처받고 힘겨울 때마다 어머니, 아니 ‘엄마’를 떠올린다.


그 2음절의 나약한 양순음(兩脣音)이 그보다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강건한 아버지보다 더 의지가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라는 사회적 존재가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수직적인 인간관계의 표상이라면, ‘엄마’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수평적 인간관계, 더 나아가 나의 일방적인 하소연마저 포용할 수 있는 원초적인 자궁(子宮)과 모태(母胎)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러한 ‘엄마’란 존재로부터의 외면과 거부는 당사자에게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큰 상실감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까? 


유정과 윤수는 모두 자신들의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래서 유정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불화하며 충동적으로 손목을 긋거나 약을 먹었고, 윤수는 끊임없이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는 세상과 운명의 힘에 불가항력적으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어서 빨리 사형 당하기만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3.

어머니로부터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외상(外傷)을 입은 유정과 윤수를 연결시켜 그들에게 소통의 기회를 준 사람은 또 다른 ‘어머니’인 유정의 ‘고모(姑母)’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이다.


자식들의 문제 앞에 섣불리 나서거나 안타깝고 애달아 발을 동동거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가시나무처럼 타인과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두 사람이 공통의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치료하고 구원할 기회를 주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현명한 어머니. 영원한 기다림으로서의 어머니 말이다.


그 어머니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만나고, 어색하고 삐걱거리는 겉도는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4.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고해성사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는다. 용서가 곧 구원이다. 그리고 용서를 통해 용서한 자도, 용서받는 자도 모두 구원받는다. 거기에 한낱 우리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길 없는 절대자의 섭리가 있다. 


아무 죄 없는 파출부였던 자신의 딸을 윤수 때문에 잃은 박 할머니(김지영 분)는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봉사하는 유정의 고모 모니카 수녀를 통해 살인자 윤수를 만난다. 박 할머니와 마주하게 된 윤수는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고, 증오와 복수심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박 할머니는 자신이 저지른 죄 앞에 떨고 있는 윤수를 용서한다. 그럼으로써 자신 또한 원망과 증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느 날 유정은 비밀을 죽음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사형수 윤수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작스런 유정의 고해에 윤수는 “미안합니다. 내가 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는 게 지옥 같았는데... 내 살고 싶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날 밤 유정은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고 윤수는 잠이 들지 못한다.


서로 깊숙이 숨겨 놓았던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갈 즈음 윤수의 사형 집행이 예정된다. 윤수가 어떻게든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유정은, 기적이라도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모진 말 때문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를 찾아간다.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를 용서한 유정은 어머니에게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말한다. 유정은 어머니를 용서함으로써 진실로 스스로에게 용서받는다.   


마침내 사형대 앞에 선 윤수는 “모든 것이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괴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사랑하는 여인이자 누이인 유정을 통해 윤수는 자신을 외면한 세상 모든 것들과 화해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렇게 윤수는 세상 모든 것들에 용서를 구함으로써 세상 모든 것들을 용서한다.     



5.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고정불변한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넘치는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 사이에 분명 존재하는 것 같은 괴리조차도 간단한 접속부사 하나로 얼마든지 이어지고 소통된다.


이야기는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다다른다. 모든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들이 흐르고 흘러 도달하는 곳. 거기에 거대한 삶의 이야기,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나와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목요일 10시 ~ 13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귀 기울여 들어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