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980년대가 사회과학, 정치철학과 경제학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문화과학, 포스트모더니즘이 풍미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가히 심리학의 시대라 할 만큼 심리학, 심리상담과 심리치유 관련 서적들이 눈에 자주 띈다. 우르술라 누버의 <심리학의 어린 시절을 말하다>도 요새 유행하는 <심리학이 어쩌고~>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정신분석학이 엄연한 과학, 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은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유아기의 경험이 그 사람의 나머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만유인력의 법칙을 당연한 물리법칙으로 인식하듯 인정하고 있다.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어른, 부모에게 받은 내면의 상처는 치명적이어서 그 이후 당사자의 성장과 발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들이운다는 게 이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굳어져 있다. 마치 일정한 공식처럼 내면의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 요 모양 요 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쉽게 도출한다. 

 

저자는 그러한 일반적인 상식이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맞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세계적인 유명인사, 마이클 잭슨, 마릴린 먼로, 오프라 윈프리, 엘턴 존과 같은 이들의 사례를 들어 그들 가운데 일부는 비참했던 어린 시절'때문에' 어른이 된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 가운데 또다른 일부는 비참했던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생활 이상을 영위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인용한 제임스 힐만의 말처럼, '어린 시절 자체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는 눈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과거는 없애버리거나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을 무의식 속에 억압해 놓는다 해도 우리가 일상에서 스트레스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억압되어 있던 과거는 언제든지 엄연한 지금 여기의 현실로 살아돌아 온다는 것이다. 과거를 상대해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과거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더이상 우리는 부모의 냉대와 무관심, 학대에 무기력하게 피해를 입는 어린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고 억눌러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를 대면하고 그를 달래 주어야 한다. 가슴 가득 끌어 안고 도닥여 주어야 한다. 이제 괜찮다고, 더이상 괴로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 아빠도 그 때엔 어쩔 수 없었노라고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용서하라고, 그들이 준 상처에도 불구하고 너에겐 스스로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워 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사로 잡혀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부모에서 자식으로, 다시 그 자식이 부모가 된 이후에 다음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번역이다. 주어와 술어가 불일치하거나, 편집 상 오류인지 앞뒤가 안 맞는 문장들이 제법 많이 발견된다. 조금만 더 신중을 기울였다면 더욱 훌륭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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