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법문 - 백봉 김기추 거사 법어집
백봉거사 지음, 장순용 엮음 / 고려원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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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역사적 진행과정 속에서 무의미한 과거의 답습이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영적 천재내지 개혁가, 반항아가 나오기 마련이다. 2500년 전 붓다가 그런 사람이었고, 예수 역시 그러했으며, 중국의 육조 혜능과 우리나라의 경허 성우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역사가 증명하겠지만 해방 이후 우리 불교계에 가장 큰 충격을 안겨 준 백봉 김기추 거사 또한 이러한 종교적 혁신을 가져온 인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백봉 김기추 거사는 재가자의 신분으로 50이 넘어 불교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승속을 초월하여 큰 선지식의 역할을 해 왔다. 그의 육체적/물질적 생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으나 그의 독창적이면서도 단순명쾌한 선지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소위 보살 불교, 기복 불교 수준에 머물러 있던 60~80년대 불교계에 상대성을 넘어 절대성의 자리에서, 중생이 그대로 엄연한 부처라는 사자후를 토해내어 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눈을 틔어 주었다.

 

수많은 대학생과 젊은이들의 그가 이끄는 보림선원에 들어와 상주하며 오직 절대 불이의 진리를 탐구했었으니 과거 석가 세존 당시의 영산회상에 비견할 수 있을까? 거사의 몸이었으나 나름대로 한 지방의 선지식이라 하던 스님들조차 타복하고 존경하여 마지않을 수 없는 선지를 지년던 그를 유마거사나 방거사에나 비길 수 있을까? 술과 여자, 심지어 부처님의 가르침에까지도 걸림이 없었던 그야말로 이 환상 같고 꿈 같고 물거품 같은 세상에서 멋지게 모습놀이를 하다 간 대자유인이라 해야 할까? 

 

비록의 그의 육성은 아니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설법 가운데 발췌하여 기록한 <허공법문>은 여전히 말과 모습에 걸려 이게 옳고 저게 그르다는 분별 속에서 아웅다웅 우리 시대에 감로수와 같은 법어집이 아닐 수 없다. 이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도저한 상대성의 세상에 시작도 끝도, 크기도 모양도 알 수 없는 허공과 같은 절대의 자리에서 이리저리 무애의 춤을 추는 백봉과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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