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 이번 생에 해내리
정과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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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공부 경험담을 담은 그다지 서적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수행인이 치열한 구도의 여정 끝에 드라마틱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내용이 일반적이다. 독자들은 그러한 서적을 통해 공부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질 수도 있겠지만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처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행력과 성취에 대해 좌절감과 열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선 공부란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것인양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도봉산에서 정진 중이란 정과 스님의 <숙제, 이번 생에 해내리>란 책은 공부를 성취한 사람이 아닌 공부길에서 헤매는 수행자의 진솔한 내면 고백이란 면에서 아주 희귀한 책이다. 출가자이기에 자신의 공부 과정과 성취에 대해 더욱 겉으로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의 공부에 대해 모든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저자의 솔직함에 한 사람의 수행인으로서 존경스럽기 그지 없다. 

 

이 공부 길에 들어서면 이른바 한 소식한 사람들,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주워 듣게 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사실이고, 대다수의 경우 잘못된 풍문인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다른 '체험', 견성이랄지, 깨달음이랄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전의 상태로 떨어진다던가 오히려 더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우연히 자성을 흘깃 일견하는 경험 이후 공부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혼자서 고분분투해 온 자신의 심경을 글로 엮었다. 쉽지 않은 결단인데, 제목에서처럼 이 생에서는 어떻게든 공부를 해 마치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치부를 홀랑 드러내 다른 이들로부터 탁마를 받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병은 소문을 내야 빨리 치유될 수 있다 하지 않는가? 옛사람들도 자성을 보기 이전의 공부는 공부라 이름할 수 없고, 자성을 본 이후의 공부가 진짜 공부라 했다. 

 

개인적으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글을 읽어나가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저자는 스스로 고백하듯이 자신이 자성을 일견하게 된 계기가 치열한 수행정진이나 화두 의심 끝에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의 의지처로 삼아 옮겨 적고 시간 날 때마다 외우는 조사 어록이나 마하리시의 가르침에서도 어떠한 수행방편이나 정진의 결과로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아무런 의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이뭣고'란 화두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출가한 전문 수행자로서의 뿌리 깊은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 다짐하듯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무심(無心), 무위(無爲), 무사(無事)해야 도에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화두라는 '물건'만은 포기 못하고 있다. 바둑도 실제 경기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은 훈수꾼이 보기에 명백한 헛점도 스스로는 잘 감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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