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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읽는 신심명 (양장) ㅣ 김태완 선원장 설법 시리즈 2
김태완 지음 / 침묵의향기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선으로 읽는 신심명>은 <선으로 읽는 금강경>(고요아침)과 <선으로 읽는 대승찬>(침묵의향기)에 이은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의 세 번째 설법집이다. <신심명>은 중국 선종 문헌 가운데 운문으로서는 최고의 문장이라 불린다. 선이 비록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유별나게 강조하지만 도가 말과 글 바깥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가려서 선택하지만 말라(至道無難 唯嫌揀擇)'는 <신심명>의 첫 구절에 모든 선의 비밀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신심명>을 텍스트로 삼은 저자의 14차례에 걸친 설법의 핵심 또한 앞의 문장 내용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즉. 선 공부는 어려운 게 아니고, 다만 이것이냐 저것이냐 분별하려는 우리의 습관만 바로 잡으면 될 뿐이라는 게 <신심명>의 저자 승찬의 가르침이자, 그것을 재료 삼아 설법하는 저자의 가르침이다.
흔히 불교, 선, 깨달음, 도, 진리 하면 막연히 뭔가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란 선입견이 있다. 대부분의 불교나 선의 전적들이 한자로 되어 있는데다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거기에 온갖 개념을 덧칠해 놓는 경우가 많아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설법이란 강연체를 통해 일상의 언어로 선 문헌을 쉽게 풀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선과 깨달음에 대해 잘못 형성된 개념과 오해들을 부수어 나간다.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용수 보살과 육조 혜능 이래 '둘 아닌 하나'의 불이중도(不二中道)의 가르침을 오늘날 가장 잘 살려 가르침을 펼치는 이가 저자가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선과 도, 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청중(독자)들에게 어떤 개념이나 의지처(수단방편)를 주는 대신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념이나 의지처마저 빼앗아 생각으로는 더이상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저자의 솜씨에 탄복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선, 진리, 깨달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든지, "시계다.", "배가 부르다.",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는 등등의 대답은 분명 어떤 질문에 답을 한 것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응답이 아닌 전혀 엉뚱한 답을 함으로써 그들이 기존에 반복해 왔던 습관적 사고의 진행을 막아버린다. 즉, 말과 생각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걸까 저걸까 하는 분별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아득한 절벽을 눈앞에 설치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저자의 말과 행위에 낯설고 어색함과 거북함을 느낄 수 있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습관적 사고가 보이는 반작용일 뿐이다. 믿음을 가지고 저자가 제시하는 말과 생각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이제까지의 답답함과 어두움이 사라지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통쾌함과 밝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흔히 선에서 말하는 돈오(頓悟),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그제서야 승찬의 말처럼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습관적으로 의지했던 분별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