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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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라는 텍스트는 참 요상해서 읽는 사람마다 자신이 '읽고자 하는 것'을 그 안에서 발견한다. '오직 예수'의 강철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읽으면 정말 '하느(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요 '메시아'인 '주님'의 '말씀'을 발견할 것이요, 냉철한 비판정신과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에게는 '불합리한 사건'으로 점철된 '신화적 허구'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전>의 저자처럼 '정치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오롯이 가난하고 힘없는 인민을 위해 '진정한 사회주의적 이상',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천국'임을 외치는 고독한 혁명가 예수를 읽어낼 수도 있다. 

 

스스로를 'B급좌파'라 칭하는 저자는 말 그대로 '좌파적 시각'으로 <마르코 복음서>를 읽으며 자신의 관점에서 복음서 내용을 풀이한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이스라엘의 정치구조와 권력구조, 각 지파별 정치적 관계 속에서 예수가 걸었던 정치적, 영적 혁명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사회 진보진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2000년 전 유대땅의 현실과 2000년 후 한반도 남쪽의 현실이 시공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사회의 지배구조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제국의 권력에 비위를 맞추며 인민을 억압하는 헤로데 왕조와 지배권력과 상호의존적인 종교 권력의 이데올로기 통치는 오늘날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우리의 친미적 정권과 그 정권의 선봉대이자 무조건적 지지를 보이는 보수 기독교회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언제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벗하며 '새로운 세상'의 복음을 전하던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제사장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의 죽음은 새로운 세상, 천국의 도래를 위해 세상을 변혁하려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임을 나타낸다. 바리사이 사람들처럼 자신의 안락함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에서 부도덕한 권력을 비판하거나 인민들의 현실과 맞지않는 주의주장을 펼치는 것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오히려 헤로데 왕조나 부패한 종교권력처럼 인민들의 원한을 직접적으로 사는 집단은 '혁명'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혁명의 장애는 바로 적당히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사적 욕망에도 적당히 타협하는 '양심적' 부류의 세력들과 지배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인민 그 자신들이다.  

 

복음서를 이런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지나치게 역사주의적 관점으로 복음서의 이야기를 읽어낸 것이 못내 아쉽다. <성서>는 역사책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종교의 경전'이기에 '진리'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는 분명 기존 사회질서, 지배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혁명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신비가로서, 영성가로서의 모습도, 어쩌면 그 모습이 더욱 예수의 진면목에 가깝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자신의 안목에 집착하여 예수를 오독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모든 독해는 오독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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