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6학년 때 내 유일한 꿈은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왜 하필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냐 하면 그 시절 내가 아는 제일 유명한 화가가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미술부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면서, 그리고 미술시간에 얻어 들은 지식을 통해 고전파, 낭만파, 사실주의, 인상파, 입체파 등등의 서양미술의 사조와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비록 사진으로나마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미술, 그림 그리기를 통해 현실 속의 대상이나 머리 속의 관념을 핍진하게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창조의 기쁨이랄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흰 도화지 위에 선과 색을 통해 무언가를 존재하도록, 아니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를 통해 사춘기의 불안감과 현실의 누추함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아직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19세기 몽마르트의 가난한 천재 화가쯤과 동일시하면서 보냈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때 미술은 내게 메마른 생활에서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다 인문계고를 진학하면서 붓을 놓았고 그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가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그림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었으나, 밥의 문제 해결이란 비참하면서도 가장 절실한 상황이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추구를 우선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딸아이 미술 숙제를 도와주다 아이가 아빠의 범상치 않은(?) 솜씨에 아이다운 경탄과 찬사를 보내면 '아빠도 예전엔...' 하면서 흘러간 유행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살펴보다가 이 책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발견했다. 일단 하드커버의 묵직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반해 대출을 했다. 특히나 '생각의 나무'란 출판사는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책은 아니지만 정말 한번쯤은 살펴봐야할 주제들을 가지고 예쁘게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고 평소에 생각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책의 겉모양보다 내용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은 틀림없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상품내지 하나의 작품으로서 책의 물질적 아름다움도 책을 선택할 때 분명 고려되어야 할 사항일 것이다.  

 

이 책은 10년 전에 신문기자였던 저자가 신문에 썼던 글을 모아 책을 낸 것의 개정판이다. 책의 중반까지는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반 고흐처럼 광기 어린 조선의 화가 최북에 대해 알게 된 것이라든지, 중학교 때 미술책에 실린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이란 작품이 사진만 전할 뿐 2차대전 때 소실되었다는 것 등 동서양의 화가들과 미술의 역사 속 여러 에피소드들은 책 읽는 동안 쏠쏠한 즐거움을 주었다. 형식 적인 면에서도 신문에 실렸던 글이 가지는 짧은 길이는 여러 모로 미덕이었고, 손철주라는 저자의 글재주는 가끔 경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을 읽는 것이 실제 작품을 '보는' 데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책에 실린 도판의 수도 너무 적어서 글에 언급된 작가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간혹 명색이 국어 선생인 내가 이해못할 어휘가 등장하는 것은 내 무식의 소치라 해도, 국어사전에조차 실려 있지 않은 말들을 남발하는 것은 무지한 독자들을 말 그대로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보다 개성있는 문체를 배우고 싶은 수필가 지망생들이 필사 연습용으로 쓰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아냥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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