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 아빠가 틀리셨는지도 모르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글쎄,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아빠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러바마주 메이콤을 배경으로, 변호사인 애티커스 핀치씨의 10살이 채 안 된 막내 딸 스카웃의 시점으로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을 변론하면서 겪게 되는 이웃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서너 살 위의 오빠인 젬이 팔을 다치게 된 사건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젊은 날의 실수로 집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라는 인물에 어린애 다운 호기심. 소통이 단절된 이웃간에 형성된 오해와 억측이 빚어내는 엉뚱한 공포.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친 위선적인 어른들의 세상. 자녀에게 편견없이 양심에 따라 인간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 등등. 이야기의 초반부는 여러 대에 걸쳐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 사이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진다.

 

후반부에서는 다른 백인 주민들로부터 경원시되던 이웰 가족의 딸이,  톰 로빈슨이란 착한 흑인을 유혹하려다 실패하자 엉뚱하게 강간죄를 뒤집어 씌우는 일이 벌어진다. 톰의 변론을 맡게 된 아버지는 사건의 진실 보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적인 관점에 사로잡힌 많은 이웃들로부터 조롱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양심에 따라 의뢰인을 보호하고 최선을 다해 그의 무죄를 입증한다. 아버지 몰래 재판을 엿보던 두 자녀 가운데 특히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발돋움하는 오빠 젬은 명백한 정황에 따라 톰이 틀림없이 무죄 판결을 받으리라 믿었으나 배심원들이 유죄를 선고하자 분노한다. 

 

끝내 톰은 자신의 무죄를 밝히지 못하고 재심을 기다리던 중에 탈옥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하고 법정에서 자신 집안의 수치가 드러났다고 생각한 밥 이웰은 공공연히 애티커스 핀치를 위협하지만 아버지는 의연히 대처한다. 마을 축제가 있던 날 가장행렬에 참여한 스카웃이 오빠와 함께 어두운 밤길을 따라 집으로 오던 중 밥 이웰의 공격을 받게 되고 급박한 혼란 중에 오빠는 팔을 다치게 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두 남매는 목숨을 구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들을 구한 것은 늘 집에 틀어박혀 있던 부 래들리씨였고 보안관의 조사결과 밥 이웰은 자신의 칼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스카웃은 부 래들리씨를 그의 집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아저씨 집앞 현관에 서서 다른 시점으로 동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백인과 흑인, 우리 가문과 다른 가문, 내가 믿는 종교와 타인이 믿는 종교, 남성과 여성, 무리짓기와 따돌리기, 관용과 배타, 양심과 위선 등등의 문제를 읽는 내내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두 남매가 서서히 사회와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 또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갖게 되는 오해와 편견, 거기에서 파생되는 근거없는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광기어린 공격본능을 깨닫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러면서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두 자녀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에 눈 떠가는 많은 젊은이와 세상의 추악함을 이미 잘 아는 어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