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음악 그림 동화 시리즈 1
에릭 바튀 그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작곡, 김하연 옮김 / 베틀북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음악시간은 고역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음악적 환경이 열악한 탓도 있지만, 언니오빠들도 음악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고 노래 부르는 시간이 되면 가슴이 떨렸다. 음악적 지식도 얕은 탓에 음악수업이 더더욱 반갑지 않았다.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사립여고였다. 합창단 활동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합창단이 받아온 트로피를 시상할 때 박수치는 것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그들이 입고 다니는 단체복장이 눈길을 끌곤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음악시간에 모차르트 풍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던 나이든 음악선생님께서  음악 감상 시험을 보겠다고 하셨다. 모두들 예고도 없이 본다며 소음을 일으켰지만, 음악감상 시험이란 게 달리 예습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합주곡을 한 시간 내내 틀어주시고는 감상문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때 나 역시 처음 써보는 음악감상문이라 어떻게 맥을 짚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듣고 있다가,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기로 했다. 큰북이 울릴 때는 큰 곰이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고, 바이올린이 울릴 때는 새들이 숲속에서 지저귀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아무런 형식을 갖추지 않고 이야기를 써나갔다.

 ‘큰곰이 화가 나서 달려든다. 새들이 이 소리에 놀라 날아오른다. 개울물이 흘러가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껏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음악과목에서 그때까지 받아본 점수 중에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음악은 감정의 자연스런 표상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고, 바이올린 앞에서 손가락이 굳어지고, 흘러나오는 곡속에서 악기를 골라 써야하는 시험의 기억들이 음악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감상의 자유로움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글자를 통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게 문학이고, 색채와 모양을 통해 감상을 표현하는 게 미술이라면, 음악은 소리를 듣고 자유롭게 감상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잘한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려 음악 전부를 등지고 살았던 유년기의 기억이 안타깝다.

‘피터와 늑대(프로코피에프 지음, 베틀북 펴냄)’는 음악에 대한 자연스런 감상을 이끄는 동화책이다. 상대적으로 책에 익숙한 많은 어린이들에게 음악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작은 새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피터는 현악기, 늑대는 호른 등으로 악곡을 만들어 등장인물들이 행동할 때마다 해당 악기의 소리가 아름답게 흘러나온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각 악기소리들이 교차하고 끝에 가서 등장인물들이 함께 선보이면서 각 악기들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한다. 동화를 읽고, 이야기 전개에 알맞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문학과 음악이 축배를 올린다. 문학과 음악 각각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다소 함량이 떨어지는 작품이지만, 문학과 음악의 자연스런 만남만으로도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를 준다. 

 CD를 통해 이야기와 음악을 함께 들어보고, 각 장면에 맞는 극본을 짜보며, 음악을 들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독후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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