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궁의 묘성 1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아사다 지로.
예상치 못한 사각에서 날린 펀치로 날 넉다운 시킨 전력의 작가다.
그의 착품 철도원을 영화 인지도에 힘입어 읽지도 않고 들여놓았을 도서대여점의 주인이 한없이 고마웠다.
작은 우연이 아니였다면 내가 아버지뻘의 노작가를 들여다보기나 했을까.
마주 앉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한 나와 나의 부모님과는 달리 아사다 지로 작품속에서의 옛날은 따뜻하고 친근했다. 그의 작품을 만나기 전 나에게 내부모님의 젊은시절은 막연했고, 그 시대는 과거였을 뿐이지만 그의 작품을 만난 후 이전 세대를 살아간 젊은이들 역시 나와 똑같은 피가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크고 큰 바다를 건너 다른 땅에서 살아온 작가지만 아사다 지로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감동적이였다.
모두가 한탄만하는 세상을 이처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나 강할까. 아픈 상처 위에 꽃잎을 바르고 다시 웃는 이들을 그리는 사람은 얼마나 큰 마음을 가졌을까.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을 읽으며 내내 묻고 또 물었던 질문들이다.

그런 그가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 라고 말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 그로하여금 넘치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견딜수가 없었다. 나에게 창궁의 묘성은 이렇듯 견딜수 없는 궁금함으로 다가왔다.

창궁의 묘성은 청나라의 마지막 자락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이 시대를 이야기 하고자 할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다. 무수히 많은 학자들과 작가들의 펜 끝에서 극과 극의 모습으로 그려진 서태후는 청의 유구한 역사 몰락의 중심에 선 여인이다. 당연히 창궁의 묘성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번엔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못 이겨 아비가 죽고, 큰 형이 죽고, 둘째 형이 죽고, 셋째 형마저 떠난 집에서 자기보다 더 어린 여동생과 미쳐버린 어머니밖에 안을 것이 없는 춘아가 주인공이다.

말똥이며 소똥을 주워 연명하는 작은 아이지만 금요람에 누워있는 아기보다 사랑스러운 춘아에게 점쟁이 백태태가 말한다. 가난한 이씨 집안의 넷째 아들 샤오리야. 너의 수호성을 오랑캐의 별, 묘성. 너는 반드시 천하의 모든 재물과 금은보화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될 게다. 인간이란 동물은 얼마나 간사한지 좋은 점괘에 기뻐하고 나쁜 점괘에 몸을 떤다. 춘아는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백태태의 점에 의해 주어진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몸부림친다.
분명 우리가 원하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지만 사억 인구의 거대한 덩치의 한 나라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시대에 춘아는 인생에 승자가 될수 없다.

춘아와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 문수는 어떤가. 시골 대지주의 서자로 태어나 형의 디딤돌 역활로 살아야 할 운명이였지만, 재상이 되리란 백태태의 점괘와 운명에게 떠밀려 젊은 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높은 자리에서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양 가난한 자들에게 연민을 갖는 곧은 사대부의 모습은 역시 영웅이 갖춰야 할 면모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나친 존재감이 넘치는 시대에서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제국의 몰락을 막고자 하였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넘을 수 없는 인물들, 서태후와 평생을 걸쳐 그녀가 사랑한 영록, 그리고 효심 지극한 새장속의 불운한 천재 광서제가 수 놓은 역사를 뛰어넘지 못한다. 더욱이 신념과 카리스마의 화신같은 이홍장 장군이며 저널리스트의 사명을 품은 토마스와 게이, 모든이들을 너무 사랑해 눈물도 용기도 넘치던 담사동과 같은 사람들이 영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 자체로 영웅임을 증명하는 광서제는 논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창아와 문수가 주인공이라고 정해져 있을진 모르나 결코 그들이 주역은 아니다. 모두가 주역이였다.
네권에 걸쳐 빼곡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할 것없이 개성적이고 생기가 넘치며 필사적이다. 춘아와 문수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나 어느하나 조연이란 이름으로 미뤄 놓을 만큼 작지 않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호통을 치고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다 지로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공정한 아버지처럼 모든 인물을 누구보다 큰 사랑으로 쓰다듬고 있다. 전작들을 관통하는 아사다 지로의 인간애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몸을 관통하는 여운에 취해 도저히 창궁의 묘성에 대한 비평을 할수가 없다. 비록 무엇보다 아름다운 이 이야기가 알고있던 인물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하여도, 어쩔수 없이 일본에 더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전작들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해 특유의 위트와 촘촘한 짜임이 모자라다 해도, 그래도, 그럼에도, 절대 나쁜 말을 쓸수가 없다.

다시금 말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그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이다. 그런 아사다 지로의 성향이 듬뿍 녹아 있는 이 작품을 깎아내리다니.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 않다. 창궁의 묘성은 분명 그가 자부한 역작임에 틀림없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품절


삽화가 무척 맘에 들었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입니다.
받아서 뜯자마자 감탄을 내질렀던 기억이 나네요.
삽화가 참 귀여워요.

이 책은 두권으로 되어있어요.
두권을 딱딱한 커버가 둘러싸고 있죠.
양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생긴 양장본입니다.
어찌보면 한권으로 묶여 나왔어도 괜찮았을 분량이네요.

아아..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군의 초상화입니다.
아시겠나요? 이 책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공룡입니다.
린트부름 요새에 살고 있는 공룡들 중 하나죠.
아직 한편도 쓰지 않았지만 작가의 도시에서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공룡입니다.
린트부름 요새의 공룡들은 모두 타고난 작가들이니까요.

이 책의 곳곳에 포진해있는 삽화들이
재미를 더해주죠,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림들입니다.

힐데의 존경할만한 대부 단첼로트는 애석하게도 죽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이건 단첼로트 대부가 그 가락 어딘가에 걸쳐졌을때 쓴 시죠. 스스로를 먼지낀 안경들이 가득 찬 궤짝이라고 생각하며..

어쨌든 존경할만한 작가이자 정원사였던 단첼로트의 유언으로 힐데는 린트부름 요새를 떠나 그 유명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납니다.

오름을 위하여!
(물론 힐데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치 않지만)

와우, 독특한 페이지,
글씨가 보이지 않아야 할텐데요.
보면 재미가 떨어질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저기 보이는 외눈박이들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ㅇㅇㅇ족입니다.

정말이지, 사랑스럽단 말로밖에 표현할수 없어요!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건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그분들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기위해 불가피했습니다.

어쩐지..
너무 편파적으로 찍어댔네요.
좋아하는 ㅇㅇㅇ족만 잔뜩 찍었습니다;
뭐, 별수 없달까요.
아무튼 슬슬 눈치채셨겠지만 그야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꿈꿀만한 세계입니다. 좋은 작품을 읽는것이 무엇보다 큰 행복이요, 작가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직업이며, 온 도시가 책을 위해, 책으로 흘러가죠.

위대한 상상력을 위해 만세!

역시 ㅇㅇㅇ족,
세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삽화입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모두 개성이 넘치죠.

보기엔 기괴해 보여도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종족이라니까요.

이건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맘에 들어 찍은 사진입니다.
부흐하임 지하에 사는 살아있는 책들은 눈도 있거나,
입이 있거나, 발이 있거나, 날개가 있죠.
책과 벌레를 잡아먹는 포악하고 위험한 책들입니다.

아아..
항상 가장 좋아하는 패이지를 찍게 되네요.
여길 읽으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왜인지 모르시겠죠? ㅎㅎ)

꿈꾸는 책들의 도시.
그야말로 환상적인 책입니다.
눈부신 상상력에 빛납니다.
완전소중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없는 이야기 1
미하엘 엔데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이 일은 영원히 그렇게 계속되리라. 사물의 흐름 속에서는 변화라는 것이 실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오로지 소년만이, 바스티안만이 그 흐름에 끼여들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이 순환 속에 갇혀 있지 않으려면 그 일을 행해야만 했다. 소년에게는 이 이야기가 벌써 천 번은 되풀이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에는 전(前)도 후(後)도 없고 모든것이 영원히 거기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소년은 노인의 손이 왜 떨렸는지 이유를 알았다. 영원한 반복의 쳇바퀴는 끝없는 끝이었다.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간혹 믿음을 보류해 둬야 하는 꿈들이 있다.
 
삭막한 생활에 젖어들며 모든 환상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다. 누구도 자신을 그토록 학대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아서 이미 우리의 아이들은 듣고 보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살해되어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하단 듯이 그들의 순수는 상실되어간다.
 
미하엘 엔데는 그들을 위해 눈물로 책을 빚었다. 그 눈물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않은 것이라 더욱 이채롭고 영롱하다. 아마 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그에게 바스티안이였다.
 
내가 다니던 국립 중학교는 2학년이 되던 해부터 부쩍 도서관에 힘을 주었다. 제일 구석에 있는 교실 하나에 간판 달고 책 몇권으로 구색을 갖췄으니 충분히 중학교 도서관 스러웠으나 그 해부터 교육 정책이 바뀌기라도 했는지(내가 학생 딱지를 달고 있는 동안에만도 몇번이나 바뀐 교육청의 정책이란 것은 이미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매달 수십에서 수백권의 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갈때마다 새로 온 책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채 바닥에 쌓여 있었고 매번 내가 기억하던 위치에 새로운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곳은 내가 첫번째로 만난 신천지였다.
 
당시는 그야말로 탐독인 동시에 무한 소비의 시절이였다. 무수한 책을 읽어 댔지만 사실 기억에 남아있는건 반에 반도 안된다. 그때의 나는 엉성한 거름망처럼 읽는 족족 그냥 통과시켜 버렸다. 책의 내용 보다 단지 글짜를 읽는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겨진 몇 가지는 나에게 있어 절대적이기까지한 가치를 얻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엔 가차 없더라도 맘에 드는 것에는 지금보다 더 쉽고 순수하게 몰입했던 탓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을 파고 들어 이후의 독서편력에 지표처럼 자리한 책이 있다.   
끝없는 이야기. 말 그대로 끝없이 되풀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다.
 
문예 출판사에서 두권 짜리로 나왔던 끝없는 이야기의 초판은 무려 1979년이다. 작년에 비룡소에서 한권 짜리로 다시 나온 모양이지만 번역이 조금 거칠더라도 내 기억속에 책장을 더듬는 편이 훨씬 좋기에 주저 없이 구판을 구입했다. 사실 극구 구판을 고집한 이유는 현실과 동화세계를 글씨 색으로 나눈 독특한 편집 때문이였다. 현실은 갈색, 환상계는 청록색이였다. 
 
용기 없는 한 소년이 환상계를 위험에서 구해내고 두려움에 맞설 줄 아는 진짜 어른으로 (정신적인)성장한다는 지극히 단순 명료한 줄거리 구조를 가진 책은 실상 그리 만만치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환상이며, 꿈이며, 의지며, 긍지며, 믿음이라는 것을, 자꾸만 쉽게 바닥을 지워버리는 어른들을 위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너희들이 그 안으로 들어서면 그것은 너희들에게 달라붙는다.
그 무(無)가 말이야. 너희들은 일종의 전염병이 되는거야.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인간들은 겉보기와 진실은 수별할 수 없이 장님이 되는 거야. 그곳에서 너희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몰라" 아트레유는 소곤거렸다.
 
"거짓말이라고 부르지!" 그모르크가 짖어댔다.
 
아트레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년의 입술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믿지 않는 꿈과 동화속 이야기는 거짓말일 뿐이다. 미하엘 엔데가 만들어낸 환상계의 피조물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無)가 환상계 전체를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어렸을때는 요정이나 도깨비를 믿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기 전에, 그들의 여왕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존재를 찾는다.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구원자. 주인공 바스티안은 책 저편에서 그들의 혼란과 긴 여정을 갈색 글씨로 바라보고 있다.
 
주체적이지 못한 겁쟁이였을 뿐인 소년은 책임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를 배우고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메세지를 책 너머의 우리에게 전한다.
 
"사람들 중에는 영원히 환상계로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코레안서 씨는 말했다. "또 갈 수는 있지만, 영원히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환상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는거야. 바스티안 너처럼. 이런 사람들이 양쪽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단다."
 
천 페이지가 넘는 기나긴 이야기를 마치고도 미하엘 엔데가 숨을 고르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제목처럼 끝없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금이야 이런류의 전개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놀라운 상상력의 발아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포기 하지 않는 한 영원히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동화와 환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같이 딱 맞아떨어지는 결말은 없다.

모든 이야기가(소설과 영화와 노래와 구전이) 스스로의 생동력을 가지고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믿음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고 아직까지 유효하다. 내가 퍽퍽한 삶에서 힘을 얻는 모든 주전부리들은 그래야 한다. 추상적일지라도, 살아있어야 한다. 절대 잊혀져선 안된다. 끝없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펄펄 살아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미하엘 엔데는 닥치는 대로 읽던 내게 절대적인 기준 하나를 심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커서 다시 읽는 그의 책은 그때와 같은 감동을 주진 않았다. 이미 많이 녹슬고 무뎌진 나의 천칭이 현실 쪽으로 더 많이 기운 까닭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리 없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미하엘 엔데가 보여주는 세상을 터무니 없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늦게나마라도 잃어버린 꿈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속는 셈 치고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아이들보다 뻔히 눈에 보이는 것도 거짓이라 믿어 버리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이미 자유를 상실해버린 어른들은 더이상 동화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미하엘 엔데의 또 다른 책 [모모]가 더 걸맞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끝없는 이야기보다 인지도가 높은 모모는 좀 더 나이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 똑같은 주제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다. 이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방법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다시 환상의 세상으로 들어가려면 길을 안내해 줄 모모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다른 기회에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Ende-     

우리는 어린 시절 창조해 냈던 그 멋진 세상을 잊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해야한다.
대다수 사람이 커가며 잊어버리는 사실일지라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는 영원히 크지 않는 어린이거나, 어른이 아님에 분명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라는 숫자로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님에 확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 농장 -조지 오웰]

 내 생에 최초이자 마지막 속셈 학원 책장 한 구석에서 발견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대여를 빙자, 결국 몇년 동안 우리집에 머물렀다. 좋게 말해 좀 오랫동안 빌린 것이지 실지로는 갖다주는게 귀찮았던것 같다. 당시 그 책은 (출판사까지 생각나지 않지만) 조지 오웰의 젊은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단편 하나와 동물농장이 묶여 있던 책으로 다행스럽게 완역본이였다. 어린이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들어가며 훼손시킨 고전들이 얼마나 많던가. 사실 좀 어렵더라도 고전은 그 자체로 마주했을때 참 맛이 나는 법이다. 아이들의 수월한 독서를 위한 의역이란 말은 암만 돌려봤자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럼 원어를 배워 직접 읽는 기쁨을 누려라 하는식의 태클은 미리 거절한다.)

 각설하고, 완역본이라 해도 어차피 동물 우화 형식을 취한 동물농장은 당시엔 어렸던 나에게도 술술 읽혔다. 어디까지나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인 표현으로만 이루어진 재밌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열 받는 개소리였다. 부당하게 군림하는 인간으로 부터 모든 동물의 평등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분노하여 일어난 혁명은 결국 돼지라는 좀 더 영악한 무리의 (어찌보면 인간보다 더 악독한)지배자를 양산해냈을 뿐이다. 얼마나 허무하고 화딱지 나는 일인가. 평등에 등급을 나누는 순간부터 이미 평등은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가. 결국 이상은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는 뜬구름인가?

 꼬맹이, 그때의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였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답을 찾아 보려 애썼던 것 같다. 완벽한 이상처럼 보였던 동물들의 봉기가 어디부터 틀어졌는지에 대해도 곰곰히 생각했고 당시 심취해있던 (애늙은이) 염세주의에 폭 빠져 궁극적으로 세상은 빌어먹게 생긴 것이니 하는식의 건방진 결론을 내려버리고 의기양양에 빠지기도 했다.

동물 농장이 우화이기 이전에 [타락한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풍자소설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였고 개기름 흐르는 돼지새끼들이 소비에트를, 답답할 정도로 복종밖에 모르는 농장 식구들이 프롤레타리아트(노동계급)을 상징한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나마 잠시 지구를 탈출하는 컬쳐쇼크를 경험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왜 그리 야속하던지. 무지한 시절의 독서는 그야말로 수박 겉만 핥고 버린 꼴이다. 좌우당간, 좀 돌긴 했지만 동물 농장은 나에게 실랄한 풍자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날카롭고 무정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한다.

 결국 권력 자체만을 목적에 둔 혁명은 또 다른 독재자를 낳을 뿐, 대중이 깨어 있지 않는 한 혁명은 성공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론에 휩쓸려 부잡스럽게 자리를 바꾸는 자각 없는 대중이 있는 한 이상은 꿈결에서나 들리는 노랫소리일 뿐 짖어댈줄이나 아는 일부 높은 분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무얼 배반당했는지도 모르는 동물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얼마나 우스운가. 풍자란 무뎌진 대중의 안일함을 이토록이나 날카롭게 후벼파는 것이였다. 뭐 그런 생각에 한동안 분해서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배신감마저 느꼈더란 이야기.

깨어 있지 않으면 대중은 또 다시 착취 당하고 버려질 뿐이다.

[불과 얼마전 대선에서 목 놓아 부르짖던 사람들이 금새 무관심해지는 모습은 차라리 섬뜩하다] 이상은 권력이라는 달콤한 꿀단지가 개입 하면서부터 변질되고 똑똑한 자는 덜 똑똑한 자들을 속인다. 동물 농장의 돼지들이 마지막에 덧 붙인 문장처럼,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 하우스 - 평범한 하루 24시간에 숨겨진 특별한 과학 이야기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7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정말 진도 안나간 책이다.
첫 장을 펼쳐 들었을때만 해도 휘리릭, 읽어치우고 다른 책을 집어 들 수 있으려니, 가벼운 마음이였지만
시작의 기세는 책의 절반을 넘어갈 무렵 똑 떨어져버렸다.
그때부터 툴툴 거리기 시작해 결국 삼일을 질질 끌었으니,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앞머리에 친절하게 달린,
발간에 앞서|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기술 발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공학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핵폭탄, 환경오염에 따른 상태 파괴, 합성물질의 위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칫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시리즈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숨쉬고 살아 있는 공학의 실제 모습을 담고자 시획했습니다. 이는 실제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공학을 대중들이 편안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휘한 것입니다.
라는 설명에 걸맞는 책이다. 평범해 보이는 한 집안에서 하룻동안 벌어지는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다룬 '시크릿 하우스'는 식탁 위에 살고 있는 세균들, 카펫과 이불 속에서 각질을 먹고 사는 진드기들, 습관처럼 먹고 마시는 먹거리들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 느끼지 못할 뿐 하루종일 내리는 전자비, 심지어 얼굴과 속눈썹에 살고 있는 생명들에 대해 다룬다.

 

인간의 눈이 가지는 한계 넘어의 것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주제다. 더구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공학의 실제 모습을 담고자 기획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공학, 화학, 과학, 기타등등의 학들을 어렵게만 느끼는 일반인들에게 친절히 다가가고자 (서양의) 일반적인 주택에서의 하루를 얼개로 잡았으니,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들을 쓰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중도'다.
정보와 재미의 비율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까다로운 독자들의 따가운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정보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넘어가지 않는 책장에 실망한 사람들은 등을 돌릴테고, 어느정도 지식을 갖춘 일부 독자들 역시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책을 찾을 것이다. 재미의 비중을 높이면 전자는 관심을 가질지 모르나 여타의 다른 문학작품들과 비교해 한참 떨어지는 재미만으로 만족하진 않는다. 데이비드 보더나스는 이 문제에 있어 꽤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진 듯 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예시들은 생소한 단어들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멀게 느껴지는 이론적인 문제를 다양한 사례가 갖는 이야기적 요소로 상쇄한다. 덕분에 신기한 지식으로 꽉 찼단 느낌을 주면서도 읽는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책이 탄생했다.

문제는, 그 지식과 정보들의 효용성이다.


요즘은 바보상자가 참 똑똑해졌다. 그래봤자 멍청한 바보상자에서 좀 덜 바보스러운 바보상자로의 진화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은 어떤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잡다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실제로 시크릿 하우스에 소개된 몇몇 장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의 확장에 지나지 않았다.

 

아토피를 일으키는 집먼지 진드기, 속눈썹에 붙어 살고 있는 독특한 종류의 진드기. 립스틱이나 비누의 재료들. 항생제들의 원료. 담배의 구성요소. 등등은 다른 매체를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이였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이들 역시 완벽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이 책이 소개하는 몇가지 사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사례를 다루기 위해 짤막하게 이어지는 탓에 심도있게 다뤄지지도 않는다.
결국 식상하게 느껴지는 일부 사례들이 책에 맥을 끊는 주범이였다.

 

그 외에도 몇가지 사례는 지나치게 '아무렴 어때' 스럽다.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하루종일 내리는 전자비나 온몸에서 떨어져 내리는 각질, 나이론 스타킹을 삭게 하는 황하수소들에 대한 몇가지 에피소드들은 내가 아무리 특별한 목적을 갖고 읽는 책이 아니래도 심하다 싶다.
놀랍긴 하지만 그래서, 그러한 정보들을 어떻게 사용하란 말인가. 어디에서 말하고, 무엇과 대입하고, 어떻게 생각하라는거지? 저자가 앞에 있다면 '그래서요?' 라는 질문이 몇번이나 튀어 나갔을 것이다.

 

물론 얇고 다양하게가 모토인 듯 보이는 무수한 사례들 중에 몇몇은 머리를 치게 만드는 기발함을 갖고 있지만, (특히 면도와 감자칩에 대한 부분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감질맛만 느끼다 말았다.

 

사람에 따라 어느정도 알고 있는 부분과, 신기하게 받아들이는 부분과, 그래서 왜? 싶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세 경우가 비율이야 어떻든 모두 들어있음엔 틀림없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시크릿 하우스는 여러 이유로 나와 그리 맞지 않는 책이였다. 나에게 공학은 새로운 발견이 아닌 그려려니 싶은 마음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경우에 따라서 어떤이에겐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계기와 같은 작용을 할 수도 있는 책이다. 일단 시작하는 의미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단 장점을 가졌으니 이 책을 계기로 공학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루는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 어느쪽에 속하는지는 직접 경험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시크릿 하우스를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