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하우스 - 평범한 하루 24시간에 숨겨진 특별한 과학 이야기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7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정말 진도 안나간 책이다.
첫 장을 펼쳐 들었을때만 해도 휘리릭, 읽어치우고 다른 책을 집어 들 수 있으려니, 가벼운 마음이였지만
시작의 기세는 책의 절반을 넘어갈 무렵 똑 떨어져버렸다.
그때부터 툴툴 거리기 시작해 결국 삼일을 질질 끌었으니,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앞머리에 친절하게 달린,
발간에 앞서|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기술 발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공학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핵폭탄, 환경오염에 따른 상태 파괴, 합성물질의 위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칫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시리즈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숨쉬고 살아 있는 공학의 실제 모습을 담고자 시획했습니다. 이는 실제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공학을 대중들이 편안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휘한 것입니다.
라는 설명에 걸맞는 책이다. 평범해 보이는 한 집안에서 하룻동안 벌어지는 '보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다룬 '시크릿 하우스'는 식탁 위에 살고 있는 세균들, 카펫과 이불 속에서 각질을 먹고 사는 진드기들, 습관처럼 먹고 마시는 먹거리들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 느끼지 못할 뿐 하루종일 내리는 전자비, 심지어 얼굴과 속눈썹에 살고 있는 생명들에 대해 다룬다.

 

인간의 눈이 가지는 한계 넘어의 것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는 주제다. 더구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공학의 실제 모습을 담고자 기획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공학, 화학, 과학, 기타등등의 학들을 어렵게만 느끼는 일반인들에게 친절히 다가가고자 (서양의) 일반적인 주택에서의 하루를 얼개로 잡았으니,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들을 쓰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중도'다.
정보와 재미의 비율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까다로운 독자들의 따가운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정보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넘어가지 않는 책장에 실망한 사람들은 등을 돌릴테고, 어느정도 지식을 갖춘 일부 독자들 역시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책을 찾을 것이다. 재미의 비중을 높이면 전자는 관심을 가질지 모르나 여타의 다른 문학작품들과 비교해 한참 떨어지는 재미만으로 만족하진 않는다. 데이비드 보더나스는 이 문제에 있어 꽤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진 듯 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예시들은 생소한 단어들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멀게 느껴지는 이론적인 문제를 다양한 사례가 갖는 이야기적 요소로 상쇄한다. 덕분에 신기한 지식으로 꽉 찼단 느낌을 주면서도 읽는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책이 탄생했다.

문제는, 그 지식과 정보들의 효용성이다.


요즘은 바보상자가 참 똑똑해졌다. 그래봤자 멍청한 바보상자에서 좀 덜 바보스러운 바보상자로의 진화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은 어떤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잡다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실제로 시크릿 하우스에 소개된 몇몇 장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의 확장에 지나지 않았다.

 

아토피를 일으키는 집먼지 진드기, 속눈썹에 붙어 살고 있는 독특한 종류의 진드기. 립스틱이나 비누의 재료들. 항생제들의 원료. 담배의 구성요소. 등등은 다른 매체를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이였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이들 역시 완벽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이 책이 소개하는 몇가지 사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사례를 다루기 위해 짤막하게 이어지는 탓에 심도있게 다뤄지지도 않는다.
결국 식상하게 느껴지는 일부 사례들이 책에 맥을 끊는 주범이였다.

 

그 외에도 몇가지 사례는 지나치게 '아무렴 어때' 스럽다.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하루종일 내리는 전자비나 온몸에서 떨어져 내리는 각질, 나이론 스타킹을 삭게 하는 황하수소들에 대한 몇가지 에피소드들은 내가 아무리 특별한 목적을 갖고 읽는 책이 아니래도 심하다 싶다.
놀랍긴 하지만 그래서, 그러한 정보들을 어떻게 사용하란 말인가. 어디에서 말하고, 무엇과 대입하고, 어떻게 생각하라는거지? 저자가 앞에 있다면 '그래서요?' 라는 질문이 몇번이나 튀어 나갔을 것이다.

 

물론 얇고 다양하게가 모토인 듯 보이는 무수한 사례들 중에 몇몇은 머리를 치게 만드는 기발함을 갖고 있지만, (특히 면도와 감자칩에 대한 부분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감질맛만 느끼다 말았다.

 

사람에 따라 어느정도 알고 있는 부분과, 신기하게 받아들이는 부분과, 그래서 왜? 싶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세 경우가 비율이야 어떻든 모두 들어있음엔 틀림없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시크릿 하우스는 여러 이유로 나와 그리 맞지 않는 책이였다. 나에게 공학은 새로운 발견이 아닌 그려려니 싶은 마음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경우에 따라서 어떤이에겐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계기와 같은 작용을 할 수도 있는 책이다. 일단 시작하는 의미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단 장점을 가졌으니 이 책을 계기로 공학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루는 다른 책들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 어느쪽에 속하는지는 직접 경험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시크릿 하우스를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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