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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 농장 -조지 오웰]
내 생에 최초이자 마지막 속셈 학원 책장 한 구석에서 발견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대여를 빙자, 결국 몇년 동안 우리집에 머물렀다. 좋게 말해 좀 오랫동안 빌린 것이지 실지로는 갖다주는게 귀찮았던것 같다. 당시 그 책은 (출판사까지 생각나지 않지만) 조지 오웰의 젊은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단편 하나와 동물농장이 묶여 있던 책으로 다행스럽게 완역본이였다. 어린이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들어가며 훼손시킨 고전들이 얼마나 많던가. 사실 좀 어렵더라도 고전은 그 자체로 마주했을때 참 맛이 나는 법이다. 아이들의 수월한 독서를 위한 의역이란 말은 암만 돌려봤자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럼 원어를 배워 직접 읽는 기쁨을 누려라 하는식의 태클은 미리 거절한다.)
각설하고, 완역본이라 해도 어차피 동물 우화 형식을 취한 동물농장은 당시엔 어렸던 나에게도 술술 읽혔다. 어디까지나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인 표현으로만 이루어진 재밌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열 받는 개소리였다. 부당하게 군림하는 인간으로 부터 모든 동물의 평등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분노하여 일어난 혁명은 결국 돼지라는 좀 더 영악한 무리의 (어찌보면 인간보다 더 악독한)지배자를 양산해냈을 뿐이다. 얼마나 허무하고 화딱지 나는 일인가. 평등에 등급을 나누는 순간부터 이미 평등은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가. 결국 이상은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는 뜬구름인가?
꼬맹이, 그때의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였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답을 찾아 보려 애썼던 것 같다. 완벽한 이상처럼 보였던 동물들의 봉기가 어디부터 틀어졌는지에 대해도 곰곰히 생각했고 당시 심취해있던 (애늙은이) 염세주의에 폭 빠져 궁극적으로 세상은 빌어먹게 생긴 것이니 하는식의 건방진 결론을 내려버리고 의기양양에 빠지기도 했다.
동물 농장이 우화이기 이전에 [타락한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풍자소설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였고 개기름 흐르는 돼지새끼들이 소비에트를, 답답할 정도로 복종밖에 모르는 농장 식구들이 프롤레타리아트(노동계급)을 상징한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나마 잠시 지구를 탈출하는 컬쳐쇼크를 경험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왜 그리 야속하던지. 무지한 시절의 독서는 그야말로 수박 겉만 핥고 버린 꼴이다. 좌우당간, 좀 돌긴 했지만 동물 농장은 나에게 실랄한 풍자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날카롭고 무정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한다.
결국 권력 자체만을 목적에 둔 혁명은 또 다른 독재자를 낳을 뿐, 대중이 깨어 있지 않는 한 혁명은 성공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론에 휩쓸려 부잡스럽게 자리를 바꾸는 자각 없는 대중이 있는 한 이상은 꿈결에서나 들리는 노랫소리일 뿐 짖어댈줄이나 아는 일부 높은 분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무얼 배반당했는지도 모르는 동물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얼마나 우스운가. 풍자란 무뎌진 대중의 안일함을 이토록이나 날카롭게 후벼파는 것이였다. 뭐 그런 생각에 한동안 분해서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배신감마저 느꼈더란 이야기.
깨어 있지 않으면 대중은 또 다시 착취 당하고 버려질 뿐이다.
[불과 얼마전 대선에서 목 놓아 부르짖던 사람들이 금새 무관심해지는 모습은 차라리 섬뜩하다] 이상은 권력이라는 달콤한 꿀단지가 개입 하면서부터 변질되고 똑똑한 자는 덜 똑똑한 자들을 속인다. 동물 농장의 돼지들이 마지막에 덧 붙인 문장처럼,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