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궁의 묘성 1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아사다 지로.
예상치 못한 사각에서 날린 펀치로 날 넉다운 시킨 전력의 작가다.
그의 착품 철도원을 영화 인지도에 힘입어 읽지도 않고 들여놓았을 도서대여점의 주인이 한없이 고마웠다.
작은 우연이 아니였다면 내가 아버지뻘의 노작가를 들여다보기나 했을까.
마주 앉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한 나와 나의 부모님과는 달리 아사다 지로 작품속에서의 옛날은 따뜻하고 친근했다. 그의 작품을 만나기 전 나에게 내부모님의 젊은시절은 막연했고, 그 시대는 과거였을 뿐이지만 그의 작품을 만난 후 이전 세대를 살아간 젊은이들 역시 나와 똑같은 피가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크고 큰 바다를 건너 다른 땅에서 살아온 작가지만 아사다 지로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감동적이였다.
모두가 한탄만하는 세상을 이처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나 강할까. 아픈 상처 위에 꽃잎을 바르고 다시 웃는 이들을 그리는 사람은 얼마나 큰 마음을 가졌을까.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을 읽으며 내내 묻고 또 물었던 질문들이다.

그런 그가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 라고 말했다. 대체 어떤 작품이 그로하여금 넘치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견딜수가 없었다. 나에게 창궁의 묘성은 이렇듯 견딜수 없는 궁금함으로 다가왔다.

창궁의 묘성은 청나라의 마지막 자락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이 시대를 이야기 하고자 할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다. 무수히 많은 학자들과 작가들의 펜 끝에서 극과 극의 모습으로 그려진 서태후는 청의 유구한 역사 몰락의 중심에 선 여인이다. 당연히 창궁의 묘성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번엔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못 이겨 아비가 죽고, 큰 형이 죽고, 둘째 형이 죽고, 셋째 형마저 떠난 집에서 자기보다 더 어린 여동생과 미쳐버린 어머니밖에 안을 것이 없는 춘아가 주인공이다.

말똥이며 소똥을 주워 연명하는 작은 아이지만 금요람에 누워있는 아기보다 사랑스러운 춘아에게 점쟁이 백태태가 말한다. 가난한 이씨 집안의 넷째 아들 샤오리야. 너의 수호성을 오랑캐의 별, 묘성. 너는 반드시 천하의 모든 재물과 금은보화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될 게다. 인간이란 동물은 얼마나 간사한지 좋은 점괘에 기뻐하고 나쁜 점괘에 몸을 떤다. 춘아는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백태태의 점에 의해 주어진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몸부림친다.
분명 우리가 원하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지만 사억 인구의 거대한 덩치의 한 나라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시대에 춘아는 인생에 승자가 될수 없다.

춘아와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 문수는 어떤가. 시골 대지주의 서자로 태어나 형의 디딤돌 역활로 살아야 할 운명이였지만, 재상이 되리란 백태태의 점괘와 운명에게 떠밀려 젊은 세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높은 자리에서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양 가난한 자들에게 연민을 갖는 곧은 사대부의 모습은 역시 영웅이 갖춰야 할 면모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나친 존재감이 넘치는 시대에서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제국의 몰락을 막고자 하였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넘을 수 없는 인물들, 서태후와 평생을 걸쳐 그녀가 사랑한 영록, 그리고 효심 지극한 새장속의 불운한 천재 광서제가 수 놓은 역사를 뛰어넘지 못한다. 더욱이 신념과 카리스마의 화신같은 이홍장 장군이며 저널리스트의 사명을 품은 토마스와 게이, 모든이들을 너무 사랑해 눈물도 용기도 넘치던 담사동과 같은 사람들이 영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 자체로 영웅임을 증명하는 광서제는 논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창아와 문수가 주인공이라고 정해져 있을진 모르나 결코 그들이 주역은 아니다. 모두가 주역이였다.
네권에 걸쳐 빼곡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할 것없이 개성적이고 생기가 넘치며 필사적이다. 춘아와 문수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나 어느하나 조연이란 이름으로 미뤄 놓을 만큼 작지 않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호통을 치고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다 지로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공정한 아버지처럼 모든 인물을 누구보다 큰 사랑으로 쓰다듬고 있다. 전작들을 관통하는 아사다 지로의 인간애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몸을 관통하는 여운에 취해 도저히 창궁의 묘성에 대한 비평을 할수가 없다. 비록 무엇보다 아름다운 이 이야기가 알고있던 인물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하여도, 어쩔수 없이 일본에 더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전작들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해 특유의 위트와 촘촘한 짜임이 모자라다 해도, 그래도, 그럼에도, 절대 나쁜 말을 쓸수가 없다.

다시금 말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그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이다. 그런 아사다 지로의 성향이 듬뿍 녹아 있는 이 작품을 깎아내리다니.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 않다. 창궁의 묘성은 분명 그가 자부한 역작임에 틀림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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