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 리 1 ㅣ 비룡소 클래식 25
쥘 베른 지음, 드 뇌빌 외 그림, 윤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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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공간을 탐색하는 인간의 본능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미지의 세계란 곧 새로운 무언가의 등장을 의미한다. 
​
산업 혁명의 정점에서 증기 기관과 전기가 세상을 바꾸던 19세기 후반,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뜨리며 불쑥 나타난 '바다 괴물'의 소문은 
당시 사람들의 도파민과 지적 탐욕을 한껏 자극했을 테다. ⚡️
​
과학이 만물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시대상을 고려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둘러싼 해양 학계의 열띤 찬반 논쟁과 
이를 추적하기 위해 출항하는 링컨호의 모습은 정복과 탐험을
 말미암아 제국주의적 시대상과 맞물려 보였다.
​
“바다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무대다.”
피에르 아로낙스 박사의 말처럼 당시의 바닷속에는
 지식이 다다르지 못한 어둠의 문명이자,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초자연적인 공간이었다. 
​
그러나 역설적으로 괴물을 마주한 인간은 
자신들이 창조한 최첨단 증기기관 앞에서 괴물이라고 칭하는 바다 고래조차
 결국엔 지쳐 굴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
미지의 존재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기술 문명의 힘으로
 자연을 제압할 수 있다는 19세기 인간의 오만이 교차하는 부분이라 인상 깊었다.
​
작살잡이 네드와 하인 콩세유, 그리고 아로낙스 박사만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괴물이라 믿었던 존재 위에 남겨진다. 
​
드디어 괴물의 정체가 철제 잠수함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신묘한 옷차림에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네모 선장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철저히 감추고, 필요하다면 타인의 자유까지 제한하겠다는 
네모 선장의 태도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아로낙스 박사에게 해저 세계 일주를 제안한다.
​
특히 11장에서 노틸러스호의 내부를 둘러보는 장면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흥미로웠다. 
바닷속을 항해하는 잠수함 안에 이토록 놀라운 공간이 존재하다니!🪎
​
네모 선장의 서재에서 '책이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라
 설명에서도 그를 더욱 비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오게 했다. 
​
이어지는 12장에서는 오직 전력으로만 
움직이는 노틸러스호의 동력 원리와 보트의 구조까지 다루어지는데, 
디테일한 과학적 지식이 앞으로 펼쳐질 해양 탐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황홀한 바닷속 풍경을 아로낙스 박사의 눈을 빌려 보고 있어도 
네모 선장과노틸러스 호에 대한 미심쩍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놀이동산’에 입장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즐거운 공간이라도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퇴장해야 할 때가 존재한다. 그런데 노틸러스 호에서는 그 시간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여러 해역을 넘나들던 노틸러스 호는 암초에 걸려 좌초한다. 
보름 후 만조가 다가오면 자연스레 벗어나리라 확신하는 
네모 선장은 육지 탐방에 나서는 세 인물을 막아서지 않는다.
​
오랜만에 육지에 발을 디딘 세 사람은 동물의 고기와 과일을 탐하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원주민들은 식인종이자 ‘야만인’이라 지칭한다. 
여기서 작품에 반영된 시대적 인식의 차이를 실감했다.
​
비유럽 사회를 미개하다고 표현하고, 
유럽 문명의 우월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에는
문화적 다양성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당대의 한계가 드러난다.💡
​
지금까지 쥘 베른이 묘사한 아름다운 바닷속 이야기는 
내게 동화 속 세상, 꿈같은 놀이동산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즐겁게 바라보던 바다 풍경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
잘 생각해 보면 아로낙스 박사와 잠수함을 이끄는 네모 선장 일행 모두
 바닷속 생물에게는 야만인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우월함을 과시하듯 만들오진 금속 잠수함의 엔진 소음은 
당시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면 해양 생물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그렇다면 원주민은 야만인이고, 노틸러스 호의 사람들은 
문명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
​
"박물학자들이 정확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산호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자라나면서 광물이 된다. " p.391

"관산호, 뇌산호, 별산호, 버섯산호, 패랭이산호가 눈부신 보석이
흩뿌려진 꽃 카펫처럼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진정 말로 그려 낼 수 없는 광경이었다!" p.394
그럼에도 바다가 선사하는 즐거움은 여전했다.
산호가 동물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산호가 이루는 아름다운 장관을 마치 영상이 재생되듯 
문장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
네모 선장과 아로낙스 박사가 나누는 바닷물의 밀도와 수압에 관한 논의도 
새롭게 배울 수 있어 흥미로웠다. 
같은 바다라도 해역과 환경에 따라 물리적 특성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한편,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잠수함에도 호기심이 일었다. 
작품 속에서 완전무결한 잠수함처럼 표현되는 노틸러스 호를 보면서 
19세기의 잠수함과 실제 공학 기술이 발전해 온 역사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
쥘베른의 상상력이 독자로 하여금 과학의 역사까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문학과 과학은 과거와 미래를 서로 공유하는 매개체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
과연 《해저 2만리》 2권은 또 얼마나 
의뭉스럽고 새로운 세계로 나를 초대할까.🐚
멀리서 나타난 하나의 점을 보고 
네모 선장과 부선장이 일행에게 숨긴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
인스타 우주 @woojoos_story 진행 및 
비룡소 출판사의 도서 협찬으로 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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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26.가을 - 70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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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어나 한 문장을 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적이지만,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랄까.

오히려 그래서 활자가 담긴 책을 통해 관심사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는 작가를 찾아보는 것 같다.

양방향 탐구 생활 , 「시소」 💌
이번 자음과 모음 가을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머문 곳은 노태훈 평론가와 이동휘 소설가가 편지를 주고받는 「시소」였다.

소설을 읽고 편지를 나누는 행위는 요즘 SNS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교환 독서’를 떠올리게 했다. 다른 사람이 책에 남긴 메모를 읽다 보면 저마다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느끼게 된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이나 장면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도 생긴다.

특히 이동휘 소설가가 "소설 읽기를 통해 제자리를 찾는다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인물과 사건, 시간과 공간을 없던 자리에서 만들어내거나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는 노태훈 평론가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펼치기 전과 읽는 도중에 자기 자신을 흘끗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두 사람의 편지를 따라가다 보니 나도 누군가와 이런 양방향의 소설 탐구를 해보고 싶어진다.

키워드의 변주, ‘오컬트’ 👻
이번 자음과 모음 계간지 가을호의 주제는 ‘오컬트’다. 거두절미하고, 정현우 시인의 시 「프렉」 을소개해 보고 싶다.

"(•••)상실을 선언하러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굴절 속에서 빛 한 조각을 들고 들어올 뿐, 누군가는 방을 빠져나간 것들을 탓하지 않고, 빛의 작은 갈래를 이식하러 오는 구원을 마다하지 않을 뿐, 푸른빛이 이미 꺾인 손가락들을 끌어안고 있는 그를 조용히 비추고 있다."

감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도 이상하게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인 특유의 문체와 문학적 분위기에 취해 오래도록 머물렀다.

오컬트라고 하면 특정 마니아들만 즐기는 장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요즘은 오컬트가 다른 장르와 결합해 OTT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확장되고, 하나의 놀이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나폴리탄 괴담을 만들고, 흉가 체험 장면을 캡처하고, 댓글로 감상과 경험을 정리하며, 각자의 해석을 덧붙여 이야기를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오컬트라는 문화가 기괴함을 넘어 몰입형 ‘놀이’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
배주영 편집 위원의 글인 「읽는 게임, 보는 괴담, 놀이형 스토리」에서는 웹소설《괴담출근》을 통해 달라진 독서 문화와 독자의 참여 방식에 대해 말한다.

"게임과 유튜브 실황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향유되던 문화가 대중적인 독자층을 포섭하면서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석하고, 공유하고, 함께 노는 것이다. "

글을 인용해서 소개하자면, 웹소설《괴담 출근》은 치밀한 설계와 긴 호흡의 연재를 통해 독자들의 해석 놀이를 지속시키며, 장르의 벽을 허물었다기보다 모든 독자를 벽 안쪽의 관람석에 앉혔다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
플랫폼 시대의 문학이 성행하는 요즘, 기술 환경이 독서와 창작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문학을 누리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독자의 자리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무엇을 읽을지뿐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읽을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흩어진 기억을 연결하는 언어, 서사의 시점 변화가 만드는 긴장감, 타인과의 연결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의 서정성까지 사로잡은 내용들이 가득한 자음과 모음 가을호였다.

관심사를 나눌 누군가를 찾고 싶어 책을 펼쳤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보니 이미 여러 사람과 긴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든다. 문장을 통해 맺어지는 느슨한 연결이란 이런 경험이 아닐까. 📝

#자음과모음 #계간지 #가을호 #오컬트 #도서협찬
인스타 @mogamjoo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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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사전 2 - 알아두면 쓸모 있고 읽다 보면 빠져드는 사물의 세계 ㅣ 그거 사전 2
홍성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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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거 있잖아.”
정확한 명칭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필수 지식은 아니지만, 모르면 괜스레 궁금해지는 수많은 '그거'들을 위한 
《그거 사전 2》가 돌아왔다. 

​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 외에도, 대화 중에 불쑥 등장하지만
 이름을 몰라 답답했던 무수한 '그거'들의 진짜 이름을 찾아보자.

​

책을 읽으며 내가 유독 경계를 나누는 구조물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패닉 바’, 

심리적 장벽을 만드는 ‘인제책’, 
공간의 소속을 나타내는 ‘문주’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

__🚪
패닉 바는 이름에 들어간 ‘패닉’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알고 
나면 마음이 아려 오는 물건이다.
 피로 쓰인 안전의 역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좀처럼 읽지 않는 문장이 있다. 

바로 문에 적힌
‘미시오.’와 ‘당기시오.’이다.
 과거 건물의 출입문 중에는 안쪽으로 당겨야 열리는 구조가 많았는데,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사람들이 출입구로 한꺼번에 몰리면 
문을 열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

대피하려는 사람들이 문 앞에 밀집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이러한 비극은 비상구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

패닉 바는 문에 설치된 가로 막대를 밀기만 해도 
바깥으로 열리도록 만든 비상 탈출 장치다. 
내게는 건물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목숨이 새겨진 물건처럼 느껴졌다.

​

__🖼️
인제책이라는 단어를 보면 쉽사리 어떤 물건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진짜 그게 뭐야?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다. 나도 그랬다.

​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 앞에 낮게 설치된 정중한 선을 인제책이라고 한다. 
40~100cm 높이의 비교적 낮은 구조물이지만, 
선 하나가 주는 심리적 장벽은 생각보다 크다.

​

우리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려다가도 
그 앞에 설치된 선을 발견하면 한발 물러서서 감상한다.

선을 긋는 행위가 하나의 규정을 만드는 셈이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면서도, 안쪽에서는 작품을 보호하고
 바깥에서는 관객의 배려를 끌어낸다.

 강제적인 통제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약속에 가깝다.

​

__🌆
문주라는 단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시골 마을을 지나다 보면 ‘수달 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아파트 입구에 브랜드나 단지명을 내세워 
설치한 구조물을 문주라고 한다.

​

아파트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며, 
첫인상과 상징성을 결정하는 대형 구조물로 변모해 왔다.

​

그런데 책에서는 문주의 역할을 단순히 
아파트의 상징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인 출입 금지에 관한 논의로 이어간다. 

하나의 문처럼 여겨졌던 문주가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도 작용한다. 

​

__🤔👀💭

그렇다면 경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세 가지 물건을 살펴보니 경계가 지닌 역할도 제각각이었다.

 패닉 바는 위급한 상황에서 경계를 열어 생명을 구하고, 

인제책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작품과 관객을 보호한다.
 반면에 문주는 소속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진입을 망설이게 하는 장벽이 된다.

​

여기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네 것과 내 것’을 구분 짓는 문화가 떠올랐다.

​

우리는 소유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데 익숙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남이 사는 아파트, 입주민과 외부인으로 기준선을 딱 그어버린다. 
재산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구분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 선을 넘어 사람의 소속과 자격까지 구분하려 한다.

​

그 중에서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시설이 
타인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순간에는 
경계가 지닌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공간일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

인제책에 주목한 이유도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높고 견고한 벽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낮은 선 하나로도 사람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지만,
 배려가 사라진 높은 장벽은 단절의 상징으로만 남는다.

​

《그거 사전 2》를 통해 이름조차 몰랐던 사물들의 쓰임을 알아가면서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

선을 긋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누군가를 보호하려 만든 선이 타인을 밀어내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어떤 경계는 열려야 하고, 어떤 경계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거 사전 2》📗
지은이 홍성윤
발행인 문태진
펴낸곳 (주)인플루엔셜 
일러스트 안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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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무엇인가 - 노동 멸시의 역사를 넘어 노동 민주주의로 ㅣ 박홍규의 사상사 3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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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라디오에서 자주 들려오는 소연의 ‘퇴사할게여’ 노래를 흥얼거리다 
사람들이 이 노래에 빠진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3대 욕구가 존재한다는데, 
여기에 ‘퇴사 욕구’를 하나 더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퇴사를 꿈꾼다.😂

그런 마음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내가 발견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따라가 보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노동할 수 없는 인간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단순히 소득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사회 안에서의 자리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노동의 현실을 생각하던 중,
 며칠 전 <생방송 오늘의 아침>에서 프랑스 기업들이 
병가 중인 직원의 이중 취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기업도 이해가 되지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병가 제도가 
오히려 노동자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이 씁쓸했다. 

노동의 권리와 책임, 
그리고 ‘게으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까지 생각하게 만든 사례였다.

그렇다면 사회가 인정하는 ‘노동’의 기준은 무엇일까.
침착맨 유튜브에 등장해 ‘빠뜨롱, 사장 나오라 해’라는 말로
 주목받았던 정일영 교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30년 동안 시간강사로 지내며 
강의와 저술 활동을 이어온 그가
 2026년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은 
오랜 시간 노동해 왔음에도 
사회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기준에서는 
비껴나 있었던 한 사람의 사례를 보여준다.

흔히 ‘노동자’라고 하면 땀을 흘리며 
고된 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를 떠올리고, 
직장에서는 ‘사람을 쓴다’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책을 읽으면서 노동과 노동자라는 단어에 
특정한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그 의미가 좁아진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스토아학파의 고대 노동관
"'그들은 노예다'라고 사람들은 선언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입니다. '노예들!' 아닙니다. 동무들입니다."

세네카가 바라본 노예의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는 노예를 잘 대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노예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고, 
그들을 어르고 달래는 방식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전략을 이야기했다.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어떤 노동은 더 가치 있고 어떤 노동은 낮다고 여기는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어 착잡했다.

🏴‍☠️해적선의 평등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인공을 
실제 모티프로 한 역사적 인물 존 래컴을 언급하며, 

해적선 안에는 나름의 민주주의적 헌법과 합의 조항, 
견제와 균형,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존재했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노예제가 당연시되던 시대, 
바다 위의 해적선은 놀랍게도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라는 
선진적인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 

잔혹한 무법자로만 기억되던 해적이 보여준 반전 모습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던 고대 학자들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노예제라는 시대적 한계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바퀴없는 바퀴=시계🕰️
19C 서양 예술의 노동관을 다룬 부분에서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 
‘바퀴 없는 바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경쟁으로 가동되는 공장에서 시계가 
노동자의 시간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설명도 흥미로웠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를 넘어 
삶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인간의 존재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을 삶과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본 블레이크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래서 노동이란?👀
인간에게 노동은 생존과 떼어놓기 어려운 행위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먹고 입고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책 속, 동양과 서양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따라 
노동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노동의 가치를 직업의 형태나
 사회적 지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닿았다.

경제적 이익과 인간의 가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부터 
복지와 직업에 대한 편견까지, 
노동을 둘러싼 쟁점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니, 사무 노동자니 하는 구별 자체가 웃기는 것, 
어쨌든 우리 모두 노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p.49

노동의 종류와 가치를 줄 세우는 일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동한다.

퇴사를 꿈꾸는 마음과 별개로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삶이라면, 
이제 중요한 것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본 도서를 들녁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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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ㅣ 네오 클래식
호메로스 지음,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엮음, 김세희 옮김 / (주)열림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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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저마다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물이 있다. 
누군가는 삶의 중심에서 길을 나서고, 
누군가는 한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견딘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의 모험보다 그를 둘러싼 
두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눈길이 갔다.

 바다를 건너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뒤에는 
궁전에서 자리를 지킨 페넬로페가 있었고, 

발걸음을 붙잡았던 칼립소의 동굴에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기다림으로 시간을 견뎠고, 
다른 한 사람은 욕망으로 시간을 붙잡았다. 

두 여성의 삶을 따라가며 인간을 
움직이는 마음과 지혜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도록 잔상이 남은 장면은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조우였다. 

페넬로페는 돌아온 남편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낯선 분’이라 부른다.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 확인되고 나서야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끌어안는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지낸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눈을 피해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이면 실을 풀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시간을 늦추며 자리를 지켜낸 것이다. 
칼을 들고 맞설 수 없었던 궁전에서 선택한 방법은 인내와 지혜였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침대는 두 사람의 삶을 상징한다. 

올리브나무의 살아 있는 뿌리에 박힌 침대는 쉽게 옮길 수 없다. 
함께 살아온 집의 중심에 뿌리내린 침대처럼 
두 사람의 삶도 한자리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둘만 아는 비밀을 통해 두 사람은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칼립소의 공간은 페넬로페의 궁전과 다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동굴에서 칼립소는 아름다운 천을 짜며 
오디세우스를 곁에 붙잡아 둔다.

페넬로페의 베틀이 시간을 늦추는 도구였다면 
칼립소의 베틀은 오디세우스를 머물게 하는 공간에 놓여 있다. 

같은 직조 행위가 한쪽에서는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두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페넬로페가 지키는 궁전에서는 부재한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고, 
칼립소의 동굴에서는 돌아가고 싶은 사람의 시간이 멈춰 선다. 

기다림과 욕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붙잡는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지혜로운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자리한 인간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본능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선택하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었다. 

반면 그의 부하들과 이타카의 구혼자들은 
눈앞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채 파멸을 향해 간다. 
같은 마음을 품고도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
“여행 중에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인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끝내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p.295_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을 들은 페넬로페의 말

화려한 무대 위 강렬한 조명 밑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영웅 오디세우스의 위대한 오디세이 너머에는 
인간 오디세우스가 겪어낸 고통의 서사가 있다. 
덕분에 긴 여정은 평화로 끝맺는다.

열림원의 네오클래식 시리즈 《오디세이아》에서 만난 
김세희 번역가의 섬세하고 
간결한 번역은 고전 특유의 높은 문턱을 낮춰준다. 

곁에서 속삭이듯 말을 건네고, 
나지막이 읊조리듯 이어지는 문체 덕분에 
대서사시의 긴 호흡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감각적인 네오클래식 디자인과 한 손에 
들어오는 가벼운 크기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당신이 나에게 경고하는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올 테면 오라지 하는 심정입니다. 
나는 고향에서 새벽을 맞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도가 산처럼 몰려온다고 해도 
다시 한번 싸울 것입니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조금 더 고통스럽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p. 73_칼립소에게 말하는 오디세우스

그래, 오디세우스의 말처럼 그저 올 테면 오라지. 

조금 더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과 가고 싶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나만의 오디세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오디세이아》The Odyssey
지은이 호메로스
엮은이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옮긴이 김세희
펴낸곳 (주)열림원 @yolimwon

서평 작성자 인스타 @mogamjoo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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