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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ㅣ 네오 클래식
호메로스 지음,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엮음, 김세희 옮김 / (주)열림원 / 2026년 8월
평점 :
🪔
세상에는 저마다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물이 있다.
누군가는 삶의 중심에서 길을 나서고, 누군가는 한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견딘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의 모험보다 그를 둘러싼
두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눈길이 갔다.
바다를 건너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뒤에는
궁전에서 자리를 지킨 페넬로페가 있었고,
발걸음을 붙잡았던 칼립소의 동굴에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기다림으로 시간을 견뎠고,
다른 한 사람은 욕망으로 시간을 붙잡았다.
두 여성의 삶을 따라가며 인간을
움직이는 마음과 지혜를 생각하게 된다.
오래도록 잔상이 남은 장면은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조우였다.
페넬로페는 돌아온 남편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낯선 분’이라 부른다.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 확인되고 나서야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끌어안는다.
오매불망 기다려온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지낸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눈을 피해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이면 실을 풀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시간을 늦추며 자리를 지켜낸 것이다.
칼을 들고 맞설 수 없었던 궁전에서 선택한 방법은 인내와 지혜였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침대는 두 사람의 삶을 상징한다.
올리브나무의 살아 있는 뿌리에 박힌 침대는 쉽게 옮길 수 없다.
함께 살아온 집의 중심에 뿌리내린 침대처럼
두 사람의 삶도 한자리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둘만 아는 비밀을 통해 두 사람은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칼립소의 공간은 페넬로페의 궁전과 다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동굴에서 칼립소는 아름다운 천을 짜며
오디세우스를 곁에 붙잡아 둔다.
페넬로페의 베틀이 시간을 늦추는 도구였다면
칼립소의 베틀은 오디세우스를 머물게 하는 공간에 놓여 있다.
같은 직조 행위가 한쪽에서는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 두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페넬로페가 지키는 궁전에서는 부재한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흐르고,
칼립소의 동굴에서는 돌아가고 싶은 사람의 시간이 멈춰 선다.
기다림과 욕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붙잡는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지혜로운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자리한 인간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본능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선택하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었다.
반면 그의 부하들과 이타카의 구혼자들은
눈앞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채 파멸을 향해 간다.
같은 마음을 품고도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
“여행 중에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인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끝내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p.295_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을 들은 페넬로페의 말
화려한 무대 위 강렬한 조명 밑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영웅 오디세우스의 위대한 오디세이 너머에는
인간 오디세우스가 겪어낸 고통의 서사가 있다.
덕분에 긴 여정은 평화로 끝맺는다.
열림원의 네오클래식 시리즈 《오디세이아》에서 만난
김세희 번역가의 섬세하고
간결한 번역은 고전 특유의 높은 문턱을 낮춰준다.
곁에서 속삭이듯 말을 건네고,
나지막이 읊조리듯 이어지는 문체 덕분에
대서사시의 긴 호흡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감각적인 네오클래식 디자인과 한 손에
들어오는 가벼운 크기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당신이 나에게 경고하는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올 테면 오라지 하는 심정입니다.
나는 고향에서 새벽을 맞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도가 산처럼 몰려온다고 해도
다시 한번 싸울 것입니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조금 더 고통스럽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p. 73_칼립소에게 말하는 오디세우스
그래, 오디세우스의 말처럼 그저 올 테면 오라지.
조금 더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과 가고 싶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나만의 오디세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오디세이아》The Odyssey
지은이 호메로스
엮은이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옮긴이 김세희
펴낸곳 (주)열림원 @yolimwon
서평 작성자 인스타 @mogamjoo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