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 뇌과학과 성선택으로 풀어본 성적 미학의 탄생
마이클 라이언 지음, 박단비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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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마이클 라이언.

왜 쟤랑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과학적 접근.

글 제목을 자극적으로 붙였지만, 사실 저런 물음과 호기심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원제에는 뇌가 없다. ‘A Taste for the Beaufiful’인데, 한국어판 내면서 최근에 뇌 들어간 책 잘 팔리는 거 보고 머리를 조금 쓴 것 같다. 부제도 ’뇌과학과 성선택론으로 풀어본 성적 미학의 탄생’으로 뇌과학을 맞춰 넣었는데, 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주 적은 비중이다. 오히려 동물행동학의 비중이 거의 압도적이다. 아 당연한 거였다. 저자가 동물행동 연구의 권위자라고 하네…
섹스 타령 많이 하고 확실히 흥미로운 책이다. 그런데 인간을 가지고 실험 관찰 연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대부분 동물, 그것도 조금 더 연구에 유리한 개구리, 조류, 곤충(특히 초파리), 물고기가 주인공이고 우리는 이로부터 인간 행동의 경향을 유추해 볼 뿐이다. 인간에 대한 것은 티셔츠 냄새 연구(자신과 다른 유전적 특성을 지닌 남자가 입던 티셔츠 냄새에 여자가 더 끌려했다는…)처럼 유명한 것들이 약간씩 나온다.
이 책은 광범위한 아름다움을 다루지 않는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인간의 전유물에 가까우니 동물로는 확인할 길이 없어서 제외. 성적 매력, 성적 선호, 성적 아름다움 같은 비슷한 용어가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또한 동물의 짝짓기 행동, 그러니까 섹스하고 싶은 상대를 선택하는 경향성에 대해서는 다루지만 인간은 그거 말고도 배우자 선택의 요인이 훨씬 다양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알만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크는 개구리나 물고기와 달리 인간은 훨씬 오래(최소 이십 년 넘게) 자손을 양육해야 하고, 또 일회적 짝짓기에 그치지 않고 양육이 다 끝난 후에도 함께 경제적, 정서적 공동체를 누군가와 유지해 나가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은 일시적인 끌림에 대한 설명 정도만 동물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여하간에 재미있잖아.

미학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아름다움 또한 인간 바깥의 어떤 절대적인 영역에 궁극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그런 말들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아름다움은 내가 바라보는 상대방이 아닌 내 뇌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당신이 결정자이다. 성적 아름다움은 개체의 형질과 그를 인식하는 감각기관 및 두뇌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43쪽)

진화는 우리 뇌가 적절한 배우자감을 얻어 자손을 남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엉뚱한 상대를 만나면 그 사이에 얻은 자손이 생존할 확률은 줄고, 결국 그런 엉뚱한 결정을 하는 개체는 도태된다. 자연선택설과 성선택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적절한 상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인간 뺨치게 다양하다.

매력적인 음성으로 우는 개구리나 새(청각), 특정한 색깔과 모양과 크기를 보이는 깃털이나 지느러미를 가진 새나 물고기(시각), 유전정보나 생식 가능성이나 종 구분을 하게 만드는 냄새(후각)까지, 수많은 감각과 이를 지각하는 생물체의 뇌가 특정한 성적 선호를 만들어낸다. 사실 4,5,6장의 이 구체적 세 감각에 대한 연구는 조금 어렵고 재미없기도 했다.
1,2,3장의 일반적인 개관이랑 7장의 시간과 남 따라가기나 비교 대상, 8장의 숨겨진 선호나 포르노가 득세하는 요인 중 하나에 대한 고찰 쪽은 훨씬 따라가기 쉽고 흥미로웠다. 1,2,3장은 읽은 지 조금 되어서 그새 기억이 안 나네...아, 3장에서 ‘좋아함’과 ‘원함’을 구분하는 부분은 나름 중요하다.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게 되는 건 아니다. ‘원함’까지 나아가는 데는 도파민의 쾌락 보상 경로가 형성되어야 한다. 갈망, 중독, 모두 도파민 짓이다. 다행인 것은 귀여운 메추라기의 짝짓기 조건-반응과 조건-소거 실험을 보니 원함 또한 소거가 되긴 된다...

7장에 시간과 변덕스러운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소개된 일화가 웃겼다. 사회진화이론학자 트리버스가 제시한 자신이 겪은 이야기이다.
‘트리버스는 거리를 걷다가 젊고 예쁜 여성들을 보고 말을 걸기 위해 접근했던 일을 회고한다. 옆을 언뜻 본 그는 흰머리가 잔뜩 나고 등이 구부러진 노인이 다리를 절면서 여성들을 좆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걸음 속도를 높이고 다시 어깨 너머를 봤지만, 스토커는 여전히 함께 있었다. 그제서야 트리버스는 스토커가 자신이었으며, 노인은 상점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젊고 예쁜 여성의 존재로 인해 그는 잠시 동안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더 젊게 인식한 것이다.’(246쪽)
성욕에 영향을 주는 시간 개념은 생식 주기와 노화가 있다. 가임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선호에 관한 연구(복장, 몸매, 목소리, 태도 등의 매력이 생리 주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그것이 상대에게도 인식됨), 생식이 불가능하기 전까지 남은 번식력을 활용하려는 여성의 성욕 증가 등. 노래 가사에서 술집이 닫을 시간이 올수록 눈이 낮아지는 자신을 한탄하는 내용이 소개되는데, 실제로 이 노래 가사로 영감을 얻어 실험을 했더니 정말로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완화, 후해진다고 한다. 사람도 그렇고, 개구리도 오랜 시간과 자원을 소비해 생성한 난자가 소멸될 무렵이 되면 그전까지 까탈부리며 걸러내던 이상한 음성의 상대 개구리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한 젊을 때 많이들 사랑합시다…

물고기 연구가 여럿 등장하는데 세일핀몰리와 아마존몰리의 사례가 가장 흥미로웠다. 세일핀몰리는 암수가 짝짓기하는 평범한 종이지만, 아마존몰리는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전원 암컷 뿐이고, 수정 없이 클론을 만들 수 있다. 단 알의 부화에는 정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수정은 아니지만 생화학적 자극을 해야 알이 발달하는 식. 그러니까 아마존몰리는 어미의 유전자만 물려받는다. 아마존몰리가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른 종이지만 그나마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한 세일핀몰리와 짝짓기하는 것이다.
세일핀몰리 수컷 입장에서는 짝짓기 해 봤자 정액만 도둑질(…)당하고 유전자도 못 남기고 체력도 빨리고 손해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왜 그러고 사나 과학자들이 궁금해했다.
가설1. 수컷 세일핀은 같은 종과 아마존 암컷 구별도 못하는 바보이다.
->가설 기각. 세일핀과 아마존 암컷 둘을 제시하면 같은 종을 더 선호하는 걸 보면 종 구별은 하는, 완전 바보는 아니다.
가설2. 상대가 누구건 신경쓰지 않는 섹스광이다.
->맞긴 맞다. 종 안 가리고 세일핀과 아마존 암컷 둘과 모두 짝짓기를 한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수컷의 이종간 짝짓기 이유는, (수컷이 이종 선호의 변태라서...는 아니고) 다른 암컷과 있는 수컷에게 또다른 암컷이 더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혼자 멀뚱히 있는 것보다 다른 종인 아마존 암컷이랑이라도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다음 잠재적 짝짓기 상대인 동종 암컷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 세일핀 암컷은 다른 세일핀 암컷과 있는 수컷을 아마존 암컷과 있는 수컷보다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더 예쁜 여자/남자 사귀고 있는 남자/여자가 더 매력적인 것...빈익빈부익부의 근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4장에 시각 관련 성적 선호 연구에서 특정 물고기 수컷에게 원래 없는 커다란 꼬리지느러미를 달아주자 암컷이 몰려드는 결과를 보여줬었다. 이 장면...내가 스무살 때 가르쳤던 열아홉살 과외학생을 일년 후 스물한살, 스무살이 되어 마주쳤을 때를 생각나게 했다. 원래 그 학생은 머리가 숏컷으로 짧았는데 엄청 긴머리가 되어 있었다. 물어보니 붙임머리를 했다고...그러면서 ‘남자가 배로 꼬여요’하고는 자기 언니와 나이트에서 만난 한 남자를 두고 번갈아 가며 만나고...서로 갖겠다고 싸운 이야기를 들려준 게 생각났다… 쓰고 보니 별로 상관은 없는 거 같은데 하여간에 동물 세계에서도 붙임머리처럼 원래 없던 뭔가를 장식적으로 붙여주면 인기가 급상승한다고 한다. 8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리의 유전자 속에 아직 발견하지 않은 선호에 대한 가능성이 숨어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면 이것이 발현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런 숨겨진 선호가 포르노가 번성하는 배경이 된다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르노 속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극단의 신체와, 극단의 행위와, 극단적인 태도들이 등장한다. 현실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인 아름다움, 비정상적인 자극인데 사람들은 그런 극단(책에서는 초정상 자극이라고 한다)에 노출되고, 포르노와 함께 극단의 쾌락, 다량의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일이 반복되면 좋아함은 원함이 되고, 결국 포르노중독이라는 성적 페티시가 형성된다. 우리 뇌의 거울 뉴런이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형태의 포르노에 자극 받으면, 일상 생활에서 파트너와 적절하게 상호작용하는 데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뭐 그렇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신체적으로 성적 아름다움을 서서히 진화시킨 동물과 달리 우리 인간은 문화적 아름다움으로 더 다양한 성적 아름다움을 뻗어나가고 있는 것… 거기에는 음악도 있고, 미술도 있고, 문학도 있고, 패션과 향수도 있고, 포르노도 있고, 하여간에 많다. 동물의 진화적 특성을 알고, 인간에게도 남아 있는 경향성을 알고, 그러면서 또 동물과 인간이 다를 수 있는 여지를 계속 생각해 보면,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내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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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9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0-08-09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깜놀했습니다. ‘그전까지 까탈부리며 걸러내던 이상한 음성의 상대 개구리‘.......... 여기에서 엄청 웃고말았다는.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중이요 ^^

반유행열반인 2020-08-09 15:11   좋아요 1 | URL
이거 엄청 신간이라 저 제 돈주고 사서 봤어요 ㅋㅋㅋ신간 신청하세요. 책 제목이 제가 지은 거 처럼 이상하지 않아서 빌려도 덜 민망할 듯. 그래도 어울리지 않는 걸 바로잡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안 예쁜 거도 예쁘다 예쁘다 하고 뇌를 속이고 예쁜 건 내 뇌새끼야 너 고장이야 하면서 또 바로잡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역시나 진화가 잘못했네요. ㅎㅎㅎㅎㅎ

파이버 2020-08-09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들을 보면 사람도 결국은 동물이구나...싶습니다ㅎㅎ 나이를 먹을 수록 눈이 낮아지는 것 슬프지만 공감이에요ㅠ

반유행열반인 2020-08-09 15:13   좋아요 1 | URL
사람도 동물이지만 또 제가 동물인 걸 자각하는 동물도 많지 않으니 개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ㅎㅎ눈을 낮추면서 오히려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