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ada > 르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 그렉 로크 사진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아직 묘지가 남아있다. 모조리 죽여라." 르완다 국영 라디오는 선언했다.

 

나는 인도주의가 뭔지 모른다. 보행자는 인도로만 다니라는 건가? 아니면 아편은 인도제가 최고라는 건가? 역사의식 같은 건 엿 바꿔 먹을래도 없다. <나의 투쟁> 같은 책을 역사적 맥락은 등한시하고 흥미로운 한 인간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을 정도니. 대략 한심한 ‘요즘’ 애들이다. 하지만 한 가지 대원칙은 있다. 인지상정.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은 거다. 니가 안 좋아하는 걸 나라고 좋아할 리 없다. 솔직히 말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보다 더 훌륭한 법률 원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느슨해진 애인 마음잡는 데는 나도 어딘가 다른 데 정신 팔린 척하는 게 직빵이다. 성폭행범은 그 짓을 못하게 해주는 게 가장 달디 단 처벌이다.


그러나 르완다는 다르다. 텅스텐 머리를 가진 애마냥 저렇게 텅 빈 깡통 같은 소리로 얼버무리기에는 르완다의 내막이 너무나 비극적이다. 고작 십여 년 전에 그런 일이 지구상에서 일어났다. 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위험한지, 르완다는 온 몸으로 세계에 말해주지 않았나. 우리는 르완다에 너무 무심했다. 르완다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르완다 학살은 ‘문명’ 세계의 입장에서 볼 때 막되먹은 무식한 인간들이 지네들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강대국은 그런 일에 왜 우리가 끼어들어야 하나, 진심으로 어깨를 으쓱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곳은 명실상부 “제 3의 세계”였다. TV를 통해 소식을 접했던 전세계인들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무식한 인간들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군, 하며 원시세계의 약육강식쯤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2차대전 후에 체결된 대량학살조약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전세계 어디서든 인종말살의 조짐을 발견하면 반드시 개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 저건 대량학살이 아냐. 쟤넨 원래 전통이 그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르완다의 부족 갈등은 서방세계의 선물이다. 아싸, 선물~ 상자를 열었더니 스프링 달린 인형이 툭 튀어나와 쌍코피를 터뜨린다. 2차대전 후 르완다를 식민통치했던 벨기에는 지들 맘대로 투치족과 후투족을 차별해서 통치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분할 정책은 제국주의자들의 고전적인 전략이다. 다수인 후투족을 억압하고 소수인 투치족을 식민 엘리트로 키웠다. (벨기에가 투치족을 선택한 이유는 콧구멍이 약간 더 좁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머리털을 죄 뽑아 짚신을 삼을 놈들!) 두 부족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점점 손쓸 수 없이 불어났다.


문명인들이 비꼬듯이, 그들을 ‘원시’ 상태 그대로 두었더라면 그냥 ‘무식’하게 살게 내버려 두었더라면 대학살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가 망령에 사로잡힌 건 그가 필요 이상 똑똑했기 때문이다. 원시 상태의 짐승은 동족을 살해하지 않는다. 종의 보존은 자연법칙의 제 1 명제이다. 투계니 투견이니 동족끼리 싸움 붙여놓고 즐거워하는 건 인간의 오락이다. 부족끼리 크고 작은 전쟁은 있었을지 몰라도 인종청소라는 못된 짓은 서양에서 배운 것이다. 그들은 빗자루는 알아도 진공청소기는 몰랐던 사람들이니까.


나는 회를 좋아한다. 회야 밥 먹듯이는 못 먹으니까 아쉬울 땐 생선초밥도 조물조물 잘 먹는다. 진정한 회는 항구에 갓 들어온 생선을 가져다가 즉석에서 사사삭 칼질해 먹는 그 맛이다. 물도 자주 갈지 않는 양식장에서 자란 물고기는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대신 인공의 군내가 식욕을 싹 가시게 한다. 양식장 밑바닥에서 썩어 문드러진 르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처치 곤란이라 고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누구든 나서서 건져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물고기를 키우지 않아야 한다.

 



징그러운 사진이지만, 르완다의 비극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완곡하다. 의사가 아니라 ‘돈’사들이 득세하는 요즘 세상에 참 인간다움을 보여준 진짜 의사들은 물론이고(MSF에 대해서는 말들도 많지만 나 자신은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위선적인 유엔으로부터 ‘순진한 자선사업가’란 조롱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생명을 구했던 진짜 군인 로메오 달레르, 도살장이 될 뻔한 르완다의 한 호텔에 주민들을 피신시켰던 용감한 폴 루세사바지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비야였던가? 내가 방구석에 앉아 이런 책 한 권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지 말라 했다. 목격자의 존재만으로도 불의는 조금씩 멀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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