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영화와 소설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
대부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 늘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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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원작 소설의 관계는 항상 경쟁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경우는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할리우드의 역사는 그야말로 훌륭한 소설을  영화화한답시고 망쳐놓은 경우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원작 소설을 개판 오분 전으로 망쳐놓은 졸작 영화가 예나 지금이나 무수히 양산되고 있다. 어째서일까? 가장 큰 문제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원작 자체가 무슨 대단한 스펙터클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다가 뭔가 "볼 거리"를 잔뜩 우겨넣으려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작품만이 남는 것이다.(문득 숱한 "고전"들의 영화화 대열 와중에서 희생된 <주홍글자>, <허영의 시장(배니티 페어)>, <몰 플랜더즈> 등이 생각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하나같이 "영화화"되어도 별로 매력을 발휘할 것 같지 않은 소설들 말이다. 아, 물론 그중 압권은 코폴라의 <드라큘라>였다. 고딕 호러 소설에 무슨 뚱딴지 같은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를 갖다 끼워맞추려다보니 정말 코미디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영화가 원작 소설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요, 기껏해야 원작 소설에 "버금가는" 수작으로 인정받으면 감지덕지일 것이다. 물론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가 없진 않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론 <대부> 역시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즉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가 "마리오 푸조의 <대부>"과의 승부에서 만장일치로 판정승을 거둔 격이었던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무척이나 잘 만든 영화 때문에 원작이 도리어 빛을 잃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작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코폴라의 <대부>를 다시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한 장면도 버릴 만한 것이 없는 영화"가 코폴라의 <대부>였다.(물론 여기서는 <대부> 1편을 말한다.) 원작 소설이 잘못되었다거나 졸작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 원작에 근거해 만든 영화가 너무나도 완벽했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에겐 이것이야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코폴라의 <대부>"만 기억하지, "푸조의 <대부>"를 기억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영화를 먼저 보고 뒤늦게야 소설을 펼친 사람은 도리어 푸조의 <대부>가 지닌 매력에 홀딱 빠져들런지 모른다. 나 역시 이 내용 가운데 뭔가를 찾아보기 위해 한밤중에 책을 펼쳤다가,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분위기에 홀딱 빠져들이 밤새 "책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은 영화처럼 일관된 줄거리를 따라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일면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영화 1편과 2편을 미리 본 사람이라면 미처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넘어갔던 장면에 담긴 잔재미를 깨닫고 무척이나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마이클이 병원 앞에 서 있을 때 그와 함께 있었던 이탈리아 사람이 누구였는지, 소니가 어째서 아버지를 따라 범죄의 길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마이클이 대대적으로 "소탕"을 하는 장면에서 경찰관 제복을 입은 "킬러"가 누구였는지 등등.) 물론 영화에서는 그저 까메오 출연에 불과했던 가수 조니 폰테인의 눈을 통해 묘사된 할리우드의 추태는 이 원작이 산만하게 보이는 데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제법 화제를 모았음직한 소재가 아니었을까.(훗날 영화에서 그 부분을 눈에 띄게 줄여버린 것은 코폴라의 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재미라는 면에 있어서는 영화 못지 않은 소설이고, 덧붙여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생략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인물(소니, 톰, 프레드, 클레멘자, 테시오)의 성격이 좀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는 점은 일종의 특별선물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영화 1편과 2편을 (순서대로) 먼저 보고나서 책을 읽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좀 더 명확한 줄거리를 머릿속에 담아두게 되어 책을 읽으면서도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면,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는 재미가 결코 반감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대부>의 영화와 소설은 아무래도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너무 앞서나가진 않았고, 원작은 미처 영화 속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와 소설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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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0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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