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oldhand > 일본 미스터리에 대한 무식한 잡설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양 문물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귀족 사회와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유럽식의 서구 문화를 그들의 생활에 접목시켰다. 그 시절 가장 돈독한 동맹국이면서도 같은 섬나라이어서 였을까. 특히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많은 유학생들이 영국에서 수학하였고, 그들은 귀국하여 일본의 엘리트가 되었다.

짙은 안개와 흐린 날씨로 유명한 영국은 대륙의 밝고 호방한 스타일 보다는 다소 어둡고 음습한 '고딕'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일본의 월드컵 경기장들을 보면 라커룸에서 경기장으로 나가는 통로가 굉장히 어둡고 축축한 느낌을 준다. 벽은 그저 콘크리트 색처럼 거무칙칙하고 조명도 밝지 않다. 영락없는 잉글랜드 축구경기장의 모습이다. 전 후 일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는 미국이겠지만 이처럼 영국의 그림자는 차량의 좌측통행 같은 생활적인 면 부터 문화적인 면까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은 무식하고 거칠게 구분하자면 크게 두 가지 분위기로 나뉜다. 하나는 일본의 현 사회상을 반영하는 소설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색이 아주 강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어딘지 모르게 탈아시아적인 유럽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이다. 전자는 하드 보일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리 소설에 가깝고 후자는 본격 미스터리의 본고장인 영국의 추리 소설에 가깝다.
더욱 거칠게 이분화 하자면 전자는 사회파와 그 영향을 받은 작품들, 후자는 초창기의 본격과 현대의 신본격에 해당한다.

마스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이치, 미야베 미유키나 다카무라 가오루,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작품들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오구리 무시타로, 시마다 소지, 아야츠지 유키토 등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만화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 등은 명백하게 유럽식 스타일을 보여주는 만화들이다.

이러한 이분법이 순문학에서도 유효할 지 어떨 지 문외한인 나는 알 수 없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저런 잡설을 떠올린 것은 최근에 읽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은 것은 처음이라 뭐라고 말 할 순 없지만, 전자의 특징과 후자의 특징이 교묘하게 맞물리고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나의 '폭력적인' 이분법에 의하면 '유럽파'다. 그렇지만 4편의 연작들 중 두번째와 세번째 에피소드들은 유럽파(자꾸 유럽파 유럽파 하니 박지성 등이 떠오르네 -_-;)로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연작 소설의 방식과 액자 소설의 구성이 보여줄 수 있는 절묘한 두가지 스타일의 조화를 갖고 있는 묘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게다가 장르의 구분도 모호한 경계 소설이 아닌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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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6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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