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이카사의 '우아시풍고'( 작은땅) 가 출간되었을 때 에콰도르의 지주들과 교회, 부자들은 소설의 내용이 너무 끔찍하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 어떤 대지주나 신부, 사업가도, 에콰도르와 페루,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지에 거주하는 농민들과 인디오들을 착취하고 무시하고 학살하는 처참한 광경 앞에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농민들과 인디오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없는 희생자였다. 내가 1997년에 에콰도르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의 현실은 이카사가 묘사한 것과 똑같았다. 그들은 아무 권리도, 아무 대책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둠만이 그들에게 소망과 꿈을 이야기할 것을 허락하기 때문에, 침묵에 잠긴 추운 밤 이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해 나는 비달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카얌베 시장의 음식점 좌판에 앉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숯불에 구운 맛난 토끼 고기를 먹다가, 농민들과 인디오 지게꾼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가는 남자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거의 귓속말로 무슨 말인가 속삭였고, 허겁지겁 달아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팸플릿 한 장을 판초 주름 사이에서 마술사처럼 은근슬쩍 꺼내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경찰들이 시장으로 들이닥쳤다. 남자는 눈 위까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장 가까이 있는 출구를 향해 바삐 걸어갔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다, 그쪽 출구도 군복을 입은 자들이 봉쇄하고 있다는걸 확인한 후 멈춰섰다. 그는 잠깐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때 우리는 눈이 서로 마주쳤다. 놀랄 정도로 경이로운 삶의 법칙에 따라, 불쌍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쫓기는 몸이었고, 나는 기나긴 망명 생활을 시작하려던 차였다. 그는 내 앞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병을 들고 길게 한 모금 들이켠 후 닭고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가 하는 대로 따랐다. 경찰들이 우리 옆을 지나갈 때 우리는 조류 독감의 폐해에 대해 전문 용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비달입니다. 노조 회의를 소집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닭고기에 대해 말하던 그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는 시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광장에 앉아 나는 그에게 팸플릿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두꺼운 활자들이 적힌, 수동 등사기로 밀어서 찍은 종이였다. 나는 케추아어를 몰랐다.

'그걸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글로 적힌 문장은 힘을 싣고 결속력을 주지요.' 비달이 말했다.

하늘 높이 반짝이는 태양이 근처 피친차 화산을 눈부시도록 빛나게 했고, 온갖 짐을 등에 잔뜩 짊어지고 몸을 숙인 채 지나가는 인디오들의 그림자를 더욱 짓눌러 내렸다.

'도시의 [우아시풍고]입니다. 그들은 땅도 없고, 빵 한 조각에 뭐든지 다 짊어집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살다가 죽어 갑니다. ' 비달이 말했다.

'비달이라고 하셨지요? 성은 뭡니까?' 내가 그에게 그렇게 물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냥 비달입니다. 그거면 충분하지요. 회의에 오시겠습니까?'

말하는 순간 질겅질겅 씹는 듯한 [에레rr]발음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렇게 그는 산(山)사람의 억양으로 노동조합원의 고된 일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임바부라 노동 연합은 만들어진 순간 무참히 짓밟혔다. 그래도 다시 만들어졌다가 또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비달은 노조의 합벅적인 등록 번호가 새겨진 고무도장과 빈 회원 카드 한 묶음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다른 쪽 주머니에는 영화 잡지 '에크란'에서 찢은 사진 한 장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비달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여자를 나에게 보여 주면서 물었다.

'그레타 가르보 아닙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녀가 나를 지켜줍니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늘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회의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세상의 절반인 광활한 밤 아래서 몇 시간을 걸어 다녔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곧 그들은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던 쭈글쭈글한 감자와 잎담배쌈지, 사탕수수로 빚은 독한 술을 모두 내놓았다. 비달은 케추아어로 그들과 얘기를 나눴다. 내가 간신히 알아들은 말은 '동료들'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농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나는 목소리 톤으로 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회의를 끝낼 때는 하늘을 급습하려는 신화 속의 모반자들처럼 서로 꼭 부둥켜안았다.

비달. 나는 다른 많은 비밀 회합 때도 그를 따라갓다. 그가 안데스 세계의 역사 속으로 나를 이끌어 주고 케추아어를 가르쳐 주는 동안, 우리는 문맹 퇴치를 위한 최소한의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가 흥분하는 모습도 보았고, 슬퍼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가 '산 후안'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보았고, 지주들을 감금했다가 이바라 병원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것도 보았다. 나는 그의 집에서 살았다. 그의 가족이 내 가족이기도 했다. 1979년 에콰도르를 떠나면서 나는 친구에게서, 최고의 동료에게서 멀어진다는 걸 알았다. 성을 몰라서 나중에 그에게 편지도 보낼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삶은 나를 수많은 길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비달을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늘 불쌍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삶이 몇 주 전 나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에콰도르의 한 인터넷 신문에, 내 친구가 피친차 화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이 실린 것이다. 그는 노조 결성식에서 농민 단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설명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달 산체스, 노조 대표...]

비달이란 사나이, 비달 산체스,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라는 브레히트의 말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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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29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겠다. 너무 좋다.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