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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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관시리즈로 유명했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 살인사건>, <십각관 살인사건>, <인형관 살인사건>,<미로관 살인사건>, 그리고 <암흑관 살인사건>까지를 읽었다. 절판된 두권이 끼워져 있으니, 아마 보통의 독자들보다는 조금 더 아야츠지 유키토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에 대해 말할때는 '재미만 있어요' 라는 혹평인지 호평인지 아리까리한 말로 그의 작품들이 그닥 내 취향이 아님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야츠지 유키토를 좋아한다!라고.

아야츠지 유키토의 새로 번역된 작품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관시리즈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관시리즈'에서는 외딴 '관'(저택)에 고립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는데, 그 '관'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괴건축가(?)가 만든 것으로서 각각 괴기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계관에는 시계가 엄청 많다거나, 미로관은 미노타우르스의 미로 이미지를 땄다거나 뭐 그런식으로 말이다. 거기에 더한 특징은 각각의 집에 있는 괴기한 장치들인데, 그 괴기한 장치들로 인한 집트릭은 더이상 그의 작품에서 비밀이 아니다. 추리소설의 매력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재미에 있어서, '집'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임을 독자가 미리 알고 있다면, 그것은 추리소설로써 단점이기도 하고, 그것을 바라고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시리즈의 매력, 아니 마력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기도 하다.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역시, 어느 시골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고성, 눈보라로 고립된 연극부 사람들, 그곳에서 한명씩 동요의 가사와 똑같이 죽어나간다는 설정이 이전의 '관시리즈'와 비슷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무월저 살인사건'으로 매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이 작품에는 '관시리즈'에 있던 몇가지 장치들이 없어졌고, 대신 관시리즈에 없던 몇가지 장치들이 더해져서, 특별히 아야츠지 유키토의 전작들을 회자하지 않고서도 이 작품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표지, 구매욕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표지의 저택 이미지는 프랑스의 상보르성 이미지이다. '저택'으로 되어 있지만, '성'스케일을 상상하면 되고, '키리고에 저택'이라는 이름은 이전 관시리즈와는 달리 저택 앞에 있는 온천처럼 따뜻한 수온의 호수 이름이 '키리고에'호수여서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눈 때문에 길을 잘못들어 키리고에 저택에 모인 극단 '암색텐트'의 멤버는 극단 암색텐트의 소유자이자  연출가인 야리나카와 그의 극단 멤버들인데, 야리나카의 본업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몇개인가의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그의 골동품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키리고에 저택에서 만나는 일본냄새 물씬나는 골동품들,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작품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곁다리이기도 하고, 작품의 '주제'이자 키리고에 저택의 컨셉이기도 하다. 사건의 화자는 극단의 작가인 린도 료이치. 그 외에 극단 멤버들로 날붙이 공포증이 있는 깐죽대마왕 나모 나시,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여배우 미즈키, 등이고, 저택에 눈을 피해 온 또다른 방문자로 닌도 준노스케 의사가 있다. 키리고에 저택에는 저택주인인 시라스카, 집사 나루세,  주치의인 마토바 등이 있고, 수수께끼의 인물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그들은 처음 안내받은 방에서 닌도 의사를 소개 받고, 눈 밝은 야리나카는 그 방에 깔린 카펫이 인동 덩굴을 도안화한 인동당초문, 인동무늬임을 발견한다. '인동= 닌도'. '처음으로 만난 사람의 성과 같은 이름을 가진 무늬의 카펫이 첫 대면 자리에 깔려 있다'  라는 우연을 발견한다.  저택의 물건들과 방문자들의 이름이 일치하는 우연은 닌도 의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야리나카를 중심으로 하나씩 자신과 관련된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은 단순히 물건과 이름의 매치뿐만이 아니다. 마침 부러진 의자로 인해 10인석이던 식탁에 딱 방문자 수만큼인 아홉개의 의자가 있고, 이름과 같은 물건이 우연히 상하게 되자, 그 이름을 지닌 인물이 죽게 된다. 

불행한 과거들을 지니고 있는 키리고에 저택과 만가지 사연을 지니고 있는 골동품들을 통해 나타나는 이상한 힘. 마토바 의사는 그것을 '저택이 저택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라고 말한다. 린도는 물건들이 지닌 다양한 삶의 모양에 끌리고, 그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이라든지, 그것에 부어진 뜨거운 시선, 그런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이 짧지 않은 작품을 덮고 어떤 종류의 찜찜함이 남는다면, '키리고에 저택'과 이야기 되지 않은 그 곳의 물건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야츠지 유키토에 대해 항상 '재미는 있고, 의미는 없다' 라며 읽는 족족 방출했더랬는데, 이 작품은 나에게 재미도 있고!(사실, 추리소설이건, 어떤 소설이건, 재미라도 있는 책들이 그리 흔하지 않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미덕일 수 있다.) 의미도 있는, 그동안 모자랐던 2%가 채워진 (비록, 애증의 괴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는 나오지 않았더라도) 작품이었다.

신본격의 기수인 아야츠지 유키토 특유의 재미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느끼게 되는 여운까지. 나에게는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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