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레베카라는 여자가 있었다. 사토장이의 딸이였다.
천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사토장이의 딸, 레베카가 헤이젤 존스로, 그리고 다시 레베카로 살아 남는 이야기이다.
아름답고, 강한, 강해서 아름다운 레베카. 인생의 첫장을 아버지와 남편의 폭력으로 시작하지만, 그 다음장부터는 자신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개척해나가는 강한 여자다. 팜므파탈이라는 말이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팜므파탈보다는 상처받은 작은새에 가깝지만, 그녀 내부의 어떤 알 수 없는 힘은 결국 그녀와 그녀의 인생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녀는 이중적이다. 레베카에서 헤이젤 존스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으나 헤이젤 존스인 그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레베카라는 이름의 무게와 과거의 그림자를 달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온 이중성일 것이다. 팜므파탈이자 상처받은 새, 누구도 믿지 않으나 동시에 무한신뢰를 준다. 사랑하고 동시에 두려워한다. 완벽하게 꾸민 겉모습에 얼핏 얼핏 드러나는 순진한 눈빛과 터져나오는 환한 미소. 종국에는 헤이젤 존스라는 이름도 농담이었다. 그녀의 깨지기 쉬운 험난한 인생에 던져진 거대한 농담.   

레베카 혹은 헤이젤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다. 두고 두고 곱씹고 싶은 캐릭터다.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지만,
그녀 인생의 악역들에게도 관심이 간다. 그녀는 사토장이의 딸이였다.  사토장이의 이름은 제이콥 슈워트. 고등학교 수학교사였고, 과학 잡지의 편집자였다. 전쟁이 일어났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 한채 미국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그의 아내와 그의 두 아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 레베카와 함께.

그들이 자리잡은 곳은 작은 도시, 그는 도시의 무덤을 관리하는 사토장이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게 된다.
사토장이, 독일에서 건너 온 유대인, 작은 마을의 가장 하층계급보다 더 아래 있었던 가족은 작은 돌오두막집에서 살게된다.
1년만 참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토장이로서의 삶은 그의 남은 평생을 좀먹는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였고, 과학 잡지의 편집자였던 남자는 자신을 굽히고, 더 굽히고, 또 굽힌다. 그 겝, 하늘과 땅만큼의 겝, 독일에서의 인생과 미국에서의 인생사이의 겝에 적응하는 그의 방법은 그의 모든 분노를 가족에게 터뜨리는 것이였다.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아내. 아들 둘은 왜 둘다 모자라고, 폭력적이여야만 했을까. 결국 슈워트가에서 마지막까지 만족스럽게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작고 약한 아이, 막내딸인 레베카였다. 레베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그녀의 남편 티그너. 190 장신에 주류중개인을 하며 전국을 오가는 그는 짐승과도 같다. 매력적인 짐승.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짐승.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그가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사랑을 믿지 않고, 그의 아내인 레베카와 조그만 아들에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에게도 그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천페이지는 결코 길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 있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물흐르듯이 자연스레 오간다.
이야기는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이야기 자체도 멋진데, 첫장부터 끝장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플롯은 책을 이제 막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첫페이지부터 펼치고 싶게 만든다.

"동물의 세계에선 약한 놈들은 죽음을 당한다. 언제나 자신의 약점을 감춰라"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조금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