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다. 그걸로 모잘라 저 멀리 우주의 트라팔마도어 행성까지도.
드레스덴폭격 현장에 있었던 화자.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내야지 하는 화자의 드레스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
"이 작품은 아주 짧고 뒤죽박죽이고귀에 거슬려요. 샘,"  "나는 내 아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커트 보네것은 숙명론자인가, 숙명론자를 풍자하는 자인가.
이 세상의 모든 시간과 행위는 정해져 있고, 시간은 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이어서, 인간은 슬퍼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다. (아니, 슬픈 시간은 잊고, 기쁜 시간에 집중하라고 하는 교주스러운 말을 한다.)

커트 보네것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제 5 도살장>은 그 정신없는 책장 속의 시간와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커트 보네것의 책 중에서 그 잔상이 가장 뚜렷하게 남는 책이다. 작가의 경험이 드디어, 그 폭격의 날이 있었던 20년 후에야 폭죽 터지듯 터져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 그러나, 드레스덴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연합군의 폭격, carpet bombing융단 폭격이란 말이 처음 생길 정도로의 무시무시한 폭격, 육십만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부상자, 그에 대한 미국의 속보이는 조사들, 발표들.

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상에서, 제 정신으로 책을 쓰기는 힘들다.
나는 지금 제 정신이라고 믿으며, 이 책을 읽기도 힘들지 모르겠다. 

드레스덴 폭격을 내세운 지독하게 씁쓸한 반전소설.  
비관적 숙명론자, 순응주의인 커트 보네것.
이 두가지는 반대편에 서 있는데, 커트 보네것은 이 둘 다를 가지고 있는듯 보인다.
아니면, 후자를 이용해 전자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No offense) 장사꾼이거나.


photo by Richard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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