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이 가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꺼내든 오츠 이치의 <쓸쓸함의 주파수>
호러단편집이라는 <ZOO>를 인상깊게 읽어서, 전에 나온 그의 작품을 샀던 것인데, <ZOO>에서 느꼈던 만족감은
느낄 수 없었다. 더 아쉬운건 '쓸쓸함'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목에 낚인 기분이다.

애절하고, 밝고, 무섭고, 슬픈 네가지 단편이 실려 있는데, '쓸쓸함의 주파수'라는 제목으로 엮기 보다는 호러단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가을용 책이 아니라, 여름용 책이었던 것이다.

내가 놓치지 않았다면, 이 작품집에서 딱 한 번 '쓸쓸함'이라는 말이 나온다. 첫번째 단편<미래예보>에서 시미즈와 '나'는 전학 온 친구 후루데라를 찾아가게 되는데, 후루데라라는 녀석은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아니고, '일기예보'처럼 틀릴 수도 있는 그런 미래예보. 집이 가까울 뿐이었던 시미즈와 나에게 후루데라는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다면, 둘은 결혼할꺼야' 라고 말한다. 그 이후, 어색해진 두 사람은 각자의 어머니를 통해 서로의 시시콜콜한 소식을 듣지만, 어색하고, 대화가 없는채로 세월은 흘러간다. 그런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겨울날의 아침은 쓸쓸한 고요함이 뒤덮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그 뒤척임조차 시미즈에게 전해질 정도였다.' 이 단편의 결말은 애잔하다. '만약..했었더라면' 의 가정은 인간을 가장 무력하게 한다.

두번째 단편인 <손을 잡는 도둑> 이야기는 유쾌하다. 망하기 직전인 회사의 시계디자이너인 '나'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두번째 시계를 제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그 돈을 훔치고자 한다. 부끄럽지만 유쾌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단편이다.

세번째 단편인 <필름 속 소녀>는 미스테리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감동적이지도 않은 밍숭맹숭한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잃어버린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오츠 이치스다웠던걸 제외하면, 소름끼칠정도로 적확한 감정과 상황의 묘사라던가, 상상력이라던가는 볼 수 없었다.  <잃어버린 이야기>는 꽤나 훌륭해서, 이 전 세 단편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만회해준다. 교통사고로 오른손의 감각만 남고,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끝나지 않는 결말의 여운과 책을 보는 내내 나까지 오른손이 저릿저릿한 정도였다. 문장 하나에 흘러가는 시간들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단편이었다.

당분간 이치의 단편집을 사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장편이라면,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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