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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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문학담당 기자였던 빌 버포드는 뉴욕의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밥보’를 취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불혹을 넘긴 나이에 자진해서 주방의 노예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호기심이 많은 기자천성은 주방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어,이 책은 저자의 요리사 되기 실전기, 주방의 뒷얘기 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주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기원까지 담고 있다.

고백하자면, 요리의 레시피를 읽는 것은 나에게 있어 외계어라 해도 좋을만큼 알쏭달쏭하고, 지루한 일이다. 한 번 해보고 싶을법도 한데,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같은 평범한 요리치와 요리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요리법과의 간극을 매워주는 것은, 역시나 저자의 글발이다. (여전히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요리 이야기는 물론, 주방에서 일어나는 요리사간의 알력이나, 항상 극을 추구하는 요리사 바탈리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Heat 앗 뜨거워>는 마리오 바탈리로 시작해 마리오 바탈리로 끝나는데, 마리오 바탈리가 바로 유명한 쉐프이자 ‘밥보’의 주인이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인, 어머니는 캐나다인이어서, 외모는 하얀 피부에 빨간 머리(꽁지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외모에서는 이탈리안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몰토 바탈리’ 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이름이 알려진 그는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말, 육중한 체구, 어마어마한 식욕, 주량, 정력 등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그의 개성있는 이탈리아 요리와 그의 분신 같은 레스토랑 ‘밥보’ 가 가장 유명하다.

뉴욕의 스타 요리사의 주방에서의 카오스는 아시아 한 끄트머리에 사는 평범한 나에게도 더 이상 비밀은 아니다. 그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해도, 빌 버포드의 생생한 (게다가 그는 직접 보기만 한게 아니라, 직접 칼을 잡고, 팬을 잡기까지 했다!) 글로 접할 수 있다. 그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라고, 1밀리미터 정육면체로 당근을 써느라 고생해 당근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고 우울하게 말할 때, 처음에 우스개소리로 ‘주방의 노예’니 뭐니 하다가 새로운 통찰력으로 ‘정말 주방의 노예’ 임을 깨닫게 될 때, 팬의 가장자리에서 사납게 튀어오른 기름이 손끝과 첫 마디 사이 여린 부위에( 묘사가 자세하기도 해라!) 지구본만한 물집을 만들었을때, 언뜻 보면 빛나는 작은 보석같은 그 지구본에 또 한 번 뜨거운 기름이 포효하며 솟아올라 손가락 마디가 아니라 거기 돋아난 보석 같은 물집을 뒤덮었을 때, 안쓰럽지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않는다.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꿈을 찾아 가겠다는데, 그렇게 질투나는 일이 어디 있어, 그 좌충우돌에 맘껏 웃기라도 해야지.

주방의 노예에도 여러 단계가 있어서, 처음에는 재료 준비로 시작하고, 그릴 라인쿡이 되어 소세지처럼 익기도 하고, 이탈리아 요리의 꽃인 파스타로 갔다가 된통 깨지기도 하면서 점차 요리사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를 험난한 요리사의 길로 끌어당긴 그의 정신적 스승인 마리오 바탈리라는 남자의 자취를 따라가기로 한다. 마리오 바탈리의 첫 스승이었던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를 만나고, ( 이 요리 장인의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결국, 바탈리의 요리의 시작이자 고향인 이탈리아로 직접 가게 된다.

부인까지 데리고 간 곳은 투스칸의 작은 산골마을의 푸줏간이다. 투스칸의 푸주한 다리오와 마에스트로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길에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이다. 책의 뒷부분을 차지하는 푸줏간 부분부터, 이야기는 좀 더 진지한 색채를 띠게 된다. 그들의 음식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또 그 아버지로부터, 또 그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음식들이다. 푸주한은 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라는 자부심. 그 푸주한은 걸핏하면 단테의 신곡을 낭송하고, 음악을 있는대로 크게 틀어 놓고, ‘손님은 x이다’라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산골 마을에서 앞으로 사라져갈 천년의 전통들을 보고, 또 직접 익히며 손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음식’ 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는다.

이야기의 끝은 찡하기까지 하다. 가볍게 읽기 위해 잡았던 이 샛노란 표지의 책은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남겨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수퍼에서 파는 음식들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싼 고기를 불매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작은 음식으로의 한걸음을 내딛었다고 믿고 싶다.

마지막을 보니, 빌 버포드의 프랑스 요리 분투기가 2편으로 나올듯하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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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0-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절대 가볍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