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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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호러 단편집. 아이들이 끔찍하게 죽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 아르헨티나의 어떤 현실을 반영한걸까?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런식의 소설이 나와 디지털 성착취 이야기와 학대, 혐오 이야기가 소재로 쓰인다면, 픽션이겠거니 하겠지만, 현실은 더 끔찍한 것임을 우리는 이제 알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현실에 이와 비슷한 조각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 조각들을 풍자하기 위한 픽션이라면, 너무 끔찍하니깐. 


호러 이야기인줄 알면 절대 사지 않았을텐데, 읽다보니, 호러 판타지 현실 풍자 단편집이다. 

첫번째 단편 '더러운 아이'부터 너무 분명한데,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지. 저런 곳에 살러 들어가지. 결은 다르지만, 여기도 외부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되겠지. 


읽기 힘들어하는 장르와 남자가 썼다면, 갖다 버릴 소재지만, 

1973년생 여성작가가 예리하고, 환상적으로 잘 쓴 글들의 모음집이다. 


한녀문학이라며, 한국 여자들의 불행 포르노와 몽롱함, 체념의 정서 질색인데, 아르헨티나 여성 작가의 이런 장르와 소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글을 읽을즈음, 아르헨티나의 낙태 합법화 뉴스를 봤다. (작년 12월 30일) 책에는 낙태 이야기도 나온다. 


그냥, 아, 나, 호러 싫은데, 못 읽겠다. 소재 너무 끔찍하고, 아이들은 왜 자꾸 이렇게 끔찍하게 죽고, 사라지는거야. 라고 하기엔 소설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들이 눈 앞에 선해서 다 읽어 버렸다. 


표제작인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에는 분신하는 여자들이 나온다. 


"이제는 분신 사건이 매주 한 건씩 일어났지만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를 막을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불을 지르고, 사고라고 했고, 여자의 실수였다고 했다. 여자는 살아남아 증언했다.  

그 일이 다른 곳에서 똑같이 반복되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불을 지르고, 사고라고 했고, 여자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고. 여자들이 정말로 분신하기 시작했다. 분신'당한' 여자들 옆에 서기 시작했고, 대상화되는 외모를 버렸다. (극단적이지만) 


"얘야, 불을 지르는 건 남자들이란다. 그들은 예전부터 우리 여자들을 불태웠지.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를 거란다. 그러지만 우리는 절대 죽지 않아. 이제는 우리 몸의 상처를 당당하게 보여줄 거라고." 


여자를 불태워 죽인 역사는 유구하다. 마녀로 몰고.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라며 길바닥에 앉아 시위할 때, 

아르헨티나의 한 작가는 몸에 불을 지르는 이야기를 써낸다. 


이런 연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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