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문차일드 > 도스또예프스끼 수집가용 한정판에 대한 소론

 

 
내가 과연 수집가였다면 이 전집을 샀을까?
25권으로 출간된 초판,
낱권으로 판매되었던 반양장 레드판,
2007년 수많은 도끼 매니아들을 통탄하게 한 보급판에 이어...
말도 많고, 탈고 많고, 때로는 출간된다는 것조차 의심스러웠던 긴 기다림 끝에
수집가용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영구보존판이 출간되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3판의 수집가용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양장본을
구매한 대부분의 독자층은
새롭게 도스또예프스끼를 읽는 입문자보다
정말 수집의 목적으로,
이 전집의 가치를 익히 몸으로 체득한 독자층이 아니었을까?
 
내가 진정한 수집가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후회의 몫은
충동구매(라곤 했지만 고민의 늪은 광대했다)한 본인보다는
열린책들의 과실이지 않을까?
 


열린책들의 보유작가군은 국내최강이다.

번역자층 또한 비할 바가 없다.

가장 멋드러진 양장본을 만들어내는 신뢰도 높은 출판사라고 생각하는 증거는

자신의 서가에서 [열린책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보급판 페이퍼백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니 미미한 불평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절판된 양장본의 복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는 절망한다.

 

이번에 출간된 도스또예프스끼 양장본은...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층에게, 또는 그 주위에

불유쾌한 스캔들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210질의 양장전집은 고유의 넘버링이 되어 있다.

그러나 흐릿하고 성의없게 찍혀있어 출간의 묘가 현저히 퇴색되었다.

최강의 홍보전략은 과대광고였단 말인가?

영구보존판이라고 하기엔,

마분지재질의 표지에 문제가 많다.

일반적인 아트지에 비해 원가가 4배는 비싸다고 했던가?

읽으려고 손에 드는 순간(대부분 400~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의)

손에 항균처리라도 되어 있지 않는한

일독한 후의 구김과 더러움에 마음이 쓰라려올 것이다.

군데군데 접혀있고, 찢겨진 페이지는 어떤가?

여러 번 출간일정이 지연되어 독자의 원성을 샀지만,

이런 상태로 출간할 수 있는 뻔뻔함은 간과하기 어렵다.

차라리 나에게만 이런 책이 왔다면 개인적인 클레임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210질이 매진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속속 들려오는 파본상태에 대한 경악의 목소리들.

 

열린책들의 담당자분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서

더욱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출판사도 당혹스러울만큼 전집의 상태는 좋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연일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210질, 그리고 전집당 18권의 도서를

일일히 확인하여 배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그 분의 말에

현기증이 났다.

이런 상태의 도서를 만들어낸 것의 최종책임은 열린책들이 지겠지만,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믿고있는 눈치였다.

 

고가의 전집이며 한정판이다.

210명의 구매자들은 특권층도 아니며 재력가도 아니다.

등가의 적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열혈 독자층일 뿐이다.

뭔가 특권이나 으쓱거림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어렵사리 결정하고 지불한 만큼에 상응하는 등가의 교환물을 받을

상식적인 권리가 보장받으면 될 일이다.

 

이미 결정되고, 출간된 도서의 리뉴얼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출판사의 의도와 독자의 기대가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출판물의 결과를 볼 수도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분주한 사후처리로 묵인해야하는 답답함이 꺼려질 뿐이다.

파본인 책은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대를 저버린 실망스런 인상까지 보상받을 수는 없다.

 

 오래오래 이 전집을 보면서

불쾌하게 달라붙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싸우게 되겠지.

수집가도 아니고 애서가도 못 되는 일개의 독자는

이런 결과를 씁쓸하게 감내해야만 하는가...

 

 도스또예프스끼라는 거대한 명성의 파고가

날 겸허하게 만든다.

3판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낙점된 스폐셜한 기획이

연일 소동으로 얼룩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열린책들이여...

책에 고유의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 아니라는 작지만 확실한 진리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가?

 

 신뢰를 완전히 접기에는 그간의 이미지와 만족도가 너무 높다.

실망보다는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출판물들을 자신작으로 내놓는

그런 출판사로 거듭나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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