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과 소비에 24시간 잠식당한 삶



마크 트웨인은 1876년에 발표한 『톰 소여의 모험』에서 그림자 노동의 개척자로 손꼽힐 만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 책의 가장 유명한 일화에서 톰 소여를 맡아 키우는 폴리 이모는 톰에게 토요일 하루 동안 “3미터 높이의 판자 담장 30미터”를 페인트칠하라고 명령한다. 설상가상으로 그 토요일은 “밝고 상쾌하고 활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모두의 마음속에 노래가 있었고, 마음이 젊은 사람이라면 노래가 입술로 흘러나왔다.” 친구들과 놀 생각밖에 없던 톰은 침울한 마음으로 페인트칠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다. 톰의 친구, 벤 로저스가 자기는 헤엄치러 간다면서 톰을 놀린다. “하지만 넌 물론 일을 해야 할 테지, 안 그래?”


톰은 벤에게 무슨 일을 말하는 거냐고 묻고는 자기는 페인트칠을 좋아한다며 벤을 놀라게 한다. “우리 같은 아이들이 담장 칠할 기회가 날마다 있는 줄 알아?” 트웨인은 “톰의 이 말에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적고 있다. 사과를 베어 물던 벤은 흠칫한다. 톰은 화가라도 된 양 계속 페인트칠을 한다. “톰은 앞뒤로 우아하게 붓을 움직이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칠한 담장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다시 여기저기 붓질을 가하고 다시 잘못된 부분을 찾아냈다.” 벤은 톰의 모습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벤은 톰 대신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 먹던 사과까지 톰에게 건넸다.


그날 종일 톰은 “순진한 동네 아이들을 대량 학살”한다. 톰은 끝없이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페인트칠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납득시켰다. 오후 서너 시쯤 됐을 때, 페인트칠은 완벽하게 끝났을 뿐 아니라 “톰은 말 그대로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었다.” 톰의 수중에는 연, 구슬 열두 개, 양철 병정, 폭죽 여섯 개, 외눈박이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트웨인은 “페인트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마을에 있는 아이들이 죄다 알거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톰 소여는 단순히 노동을 재규정함으로써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페인트칠이 따분한 잡일이 아니라 예술적인 면이 가미된 즐거운 작업이라고 아이들에게 납득시켰다. 일이 놀이가 되자, 본능적으로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 좋은 토요일에 기꺼이 페인트칠을 받아들였다.


무언가를 다시 규정하면, 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그림자 노동의 개념은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을 재규정할 수 있다. 그 작업들은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받고 해 온 것인데도 결코 일로 분류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림자 노동이라는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50년대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편지를 타이핑하고 상품을 조사하고 식료품값을 계산하고 샐러드를 만들고 캔과 병을 버리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는 일을 주유소 점원과 비서, 판매원, 계산원, 웨이트리스, 환경 미화원, 은행 직원, 버스 기사들이 처리했다. 오늘날에는 바로 당신이 이 일들을 물려받았다. 그 일들은 모두 그림자 노동이 되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직장 밖에서 하는 많은 일이 그림자 노동에 해당한다. 싱가포르 증시 폭락 같은 사태에 일자리가 영향을 받는 사람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경제로 인해 집에서도 회사 일을 놓지 못한다. 늘 일이 최우선인 동료는 스마트폰으로 주변 사람들을 속박한다. 저녁 8시에 남편과 식당에서 막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는 순간 상사가 문자를 보낸다면, 당신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사생활 침해가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한 새로운 관습은 더 많은 일, 그리고 더 많은 그림자 노동에 문을 열어 준다.


여가의 침식은 다른 모든 침식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모래알 하나씩 꾸준히 진행된다. 그리고 그 과정의 지속성에 의해 영향력이 강해진다. 그 모래알들은 날마다 하나씩 계속 사라지면서 인생의 모래시계를 떠나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림자 노동의 물결도 결코 쉬는 법이 없다. 이 여분의 일들이 갑자기 생겼다면, 여기저기서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게 한 번에 1초씩 잠식해 들어가다 보니 조금의 잡음도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후각은 낯선 냄새라도 한동안 지속되면 거기에 적응한다. 새로 붙인 식당 벽지를 더 이상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처럼, 코와 뇌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새로운 냄새라도 그 냄새에 적응하고 나면 더 이상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상적인 그림자 노동에 적응한다. 그것이 일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손님이 직접 아이스크림을 담아 먹어야 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주유 직원이 한 명에 불과한 주유소에도 점점 더 익숙해진다.


수많은 사람에게 그림자 노동을 시키려면, 그 새로운 일을 묻거나 따질 여지가 없는 문제로 여기게 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피하는 것이 필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적어도 가끔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림자 노동을 원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정용 임신 테스트기 같은 것은 장점이 있다. 간단하고 비용도 덜 들고 더 편리하다. 그리고 병원 검사실을 상대하는 경우보다 비밀을 지키기가 더 쉽다. 이와 대조적으로 메일함에서 스팸 메일을 지우는 일은 아무런 장점도 없고 다른 간편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림자 노동을 강요한다.



- 『그림자 노동의 역습』 출간 전 연재 3회에서 계속



<민음사 출간 전 연재 안내>


① 출간 전 연재는 매주 화/ 목/ 토 <민음사 알라딘 서재>에서 단독 공개 됩니다.

② [출간 전 연재] 글은 책의 본문 내용 중 편집을 거쳐 공개됩니다. 

③ 『그림자 노동의 역습』은 2016년 10월 21일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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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2016-10-1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당연한 듯이 했던 청소를 비롯한 다양한 행위들이 그림자 노동이라니...읽으면서 머리를 때리는 무언가가 있다. 하는 것 없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일들이 그림자 노동에 해당되지 않을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은 대가 없는 이미 규칙적으로 익숙해진 일을 하니까 그런 느낌을 받고 난 피곤했나 보다

chika 2016-10-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팸메일을 지우는 것, 도!

미첼 2016-10-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상황에서는 그림자노동이 타국에 비해 더욱 심하겠군요... 카톡경영, 셀프주유소, 셀프 물...오싹합니다

곤약젤리 2016-10-1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던 일들을 우리가 하게 되는 현상이 무섭게 느껴지네요. 신선한 관점의 접근이 마음에 듭니다.

ase0509 2016-10-16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한 시대에 살면서 더 편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네요.나에게 쓸모없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들을 다시 점검해보게 되네요~

봄나무 2016-10-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소여의 페인트 칠하기-는 정말 재미있었죠! 읽어보니 우리는 많은 그림자 노동에 익숙해져있는 것 같네요.

letitgo 2016-10-19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술의 발달로 인해 손안에 컴퓨터가 한대씩 쥐어줬는데 이로 인한 변화를 그림자 노동이라 함은 조금 무리라 생각되요.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아닐테니고요. 무슨 말을 하고픈 것일까요?

Chloe 2016-10-20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쉬우면서도 어려운^^ 은근히 생각을
많이 하게되는 책이네요. 이런 느낌 참 좋아요♥

노란개구리 2016-10-2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군요.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인데 스마트폰으로 인해 늘어나는 노동량에는 엄청 동의합니다. 없으면 안해도 될 것들을 있음으로 인해 하게되죠.

레피 2016-10-29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슬쩍 떠넘겨진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그리고 그런일을 자발적으로 했다는 착각만으로도 아무 반발없이 진행이 되고 있다니 놀랍네요

계란 2016-10-3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소여의 페인트칠 이야기는 볼대마다 대단한것 같아요. 그림자 노동을 위한 재정의 무섭네욛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