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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바이블 -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가 털어놓는 모든 것, 2017-18 개정증보3판 ㅣ 좋은집 시리즈
조남호 외 지음 / 마티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에게는 뿌리를 내릴 터가 필요하다. 그 터가 1평 남짓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더 좁은 땅 안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사는 도시의 가로수들을 보더라도 땅의 크기는 신경쓸 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나의 터'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나의 터에 관한 집착은 지난 6년 간 3번 넘게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며 이사한 소시민의 뼈마디마디에 새겨졌다. 인문학, 소설 혹은 필요한 문제집 코너만 돌던 나의 인생에도 건축이 찾아온 건 이 시점이었다.
초창기만 해도 집짓기를 바로 떠올린 건 아니었다. 이미 지어져서 휘황찬란한 집이 많은데 굳이 내가 신경까지 써가며 만들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땅 살 돈도 없는 내가 이미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축의 프리미엄 가격을 댈 리는 만무했다. 또한 아무리 멋들어진 집이라도 꼭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가 하나씩은 껴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지적을 할려할 때면 마음 속에서 작은 '나'가 외쳤다. 불만있음 네가 지어!
<집짓기 바이블>은 집짓기의 이해관계자인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집짓기에 관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실질적 문제를 두고 빚어지는 갈등과 그 해법에 관해 제시해주고 있다.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내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좋은 설계가 무엇인지, 시공 중에 있을 법한 갈등들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터뷰 형식으로 질답이 오가는 편집 방식은 보다 쉽게 독자들에게 읽히겠다는 정성이 보여서 좋았다. 건축 책이 초장부터 건축의 역사를 논하면서 전문가의 건축 논리를 풀어봐라. 집짓기도 전에 의지부터 쏙 빠질라.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오류들을 바로 잡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아파트에 오래 산 나의 입장에선 집 자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제품으로 취급하게 되곤 하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착각이란다. 좋은 조건의 집이라도 단독주택은 문제가 많다는 게 현실이란다.
아파트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작은 하자도 건설사에서 AS 해주길 바라듯이 집도 하나의 완성된 제품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짙습니다. 좋은 조건에서 집을 짓더라도 굉장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힘든 요소들이 많습니다.
일본처럼 단독주택이 오랜 기간 지어져서 노하우가 쌓였다든지, 시공법이 정형화되었다든지 하는 공감대가 국내에는 거의 없지요. 아직 국내에는 전형적인 집짓기 방법이나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건축가가 설계한 집과 시공사가 짓는 집의 수준이나 공사비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단독주택 문화가 좋은 방향으로 정착이 되면 앞으로 건축가도 시중에 있는 제품을 이용해 집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고, 시공사도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시 풍경에 보탬이 되는 건강한 집을 짓는 중견 건설회사들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건축가들도 보편적인 집짓기에 협력해야 합니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 이 진리에 일조권, 조경, 도로사선, 전기와 수도 인프라, 주차대수 산정, 건축선, 단열 기준이 들어간다. 놀랍게도 이건 기본 설계 요소이다. 집을 또 다른 영역으로 분리해 욕실, 마당, 거실, 서재, 부엌 등에 따라 마감재와 소재가 달라지기도 한다. 집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역동이 느껴지는 듯 하다. 건축이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의 삶의 질을 모두 반영한 매우 지적인 생활 활동이 아닐까.
<집짓기 바이블>을 완독하면서 생각하건데, 자기 집을 짓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은 집에 관해 공부해 볼 필요성이 있다 싶었다.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박힌 뿌리가 좋은 나무로 성장하듯, 내실을 탄탄히 만들어 평생 살 집을 소망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3년의 시간조차도 길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마인드 테스트로 빚어져야 보다 완벽한 구상과 튼튼한 집이 나올 수 있다. 나의 집, 나의 터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책을 볼 것도 없이 <집짓지 바이블> 하나만 가지고 3년을 파도 무방하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 3년을 세면서 <집짓기 바이블>을 펴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