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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솜씨가 훌륭하지 않아도
와타세 겐 지음, 이윤경 옮김 / 지금이책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필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가장 극악한 행위 중 하나를 꼽으라면 면접이다. 못 붙을 것 같았던 좋은 대학의 바늘 구멍만한 서류 전형에 붙은 날 뛸듯이 기뻐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면접은 쉽게 떨어졌다. 긴장에서 혀가 뻣뻣해졌고 물어보는 질문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생각없이 얼른 말하려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간절했던 선택의 기로에서 면접은 내게 큰 장애물이었고, 번번이 면접 때문에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어느 새부터인가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난 원래 말솜씨가 부족해!'
<말솜씨가 훌륭하지 않아도>의 저자 와타세 겐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교실에 들어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생님이 억지로 시켜야 한마디 겨우 쥐어 짜낼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소심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학창시절 한번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고 하는 그가 영업 사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솜씨가 늘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말솜씨는 커녕 최악의 영업 실적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입사한 지 10개월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해서 전국 영업 실적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선보였다. 이 눈부신 변화에는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업사원의 이미지는 '말을 잘한다'이다. 소비자인 내가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관심법과 뛰어난 화술로 순식간에 대화를 틀어잡는 게 영업사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와타세 겐은 발상을 전환하는 방식을 택한다. 대화할 때 반드시 자신이 말을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말솜씨를 키우기 보다는 상대방이 이야기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 방식을 대화 유도법이라 한다.
그는 여러가지 사례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말을 해야 상대방이 편안하고 보다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의 상황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질문'을 통해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처음 만난 자리, 회식이나 모임, 직장 상사나 손윗사람, 이성과의 데이트, 면접, 회의, 수업 시간의 발언이라는 한번쯤은 경험해 볼 듯한 상황들은 나로 하여금 '아 맞다, 나도 저런 경험이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그는 '이거 하나면 상대방 마음이 움직이는' 편리한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어느 상황이든 백발배중 통하는 질문이 없다는 소리다. 상대가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버튼만 누르면 매번 똑같이 반응하는 로봇이라면 말솜씨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실적하고 관계가 없을 것이다. 같은 질문에도 그날그날의 기분과 환경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질문자의 태도와 묻는 방식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래도 상대방의 질문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대답할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 뿐이다. '상대방에게 100% 집중하는 것' 이라고.
그는 한 때 심리학 책도 수십권 씩 읽어가며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가려고 애썼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건 책만의 공부로는 도통 늘 수가 없다. 오히려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생각하고 있으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다음 질문을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행하는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 기본이다. 그 사람은 당연히 상대방이고, 여러 단체고, 그 뒤에 있는 무수한 배경의 타인이나 군중일 수도 있다. 그들의 기에 짓눌려 정작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응대하고 있는지 놓치기가 일쑤다. 사회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들을 요구한다.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이 어떻든 원만한 대인관계와 적극적인 어필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방책이 있는 법이다. 말솜씨가 없어도 우리 역시 대화할 수 있다. 스스로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1위 대화법은 상대방의 내면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겠다는 배려의 마음에서 피어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