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다면 널 사냥하겠어 - 단편
진진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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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아님. 완성도 높은 로맨스 소설임)

 

이야기는 주인공 혜린의 인생에서 1년을 조금 넘어가는 기간 동안의 상황들을 각각의 캐릭터의 관점에서 다소 어지럽게 전개하는 듯 하면서도 결코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아마도 책을 쓰는 시간보다 탈고하는 시간이 서너배는 더 필요했을 것 같다.

 

로맨스 소설의 뻔한 왕자님과 그 왕자님에게 시기와 질투를 품고 있는 제 풀에 꺽이는 귀족의 역할도 있다. 신데렐라를 지원해주는 요정도 있고, 요정의 지시를 받는 백마도 있다. 물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신의 삶을, 어렵지만 (나의 기준으로는)엽기적인 방법으로라도 이룩하려는 신데렐라도 나온다. 신데렐라가 자신의 모습에 눈 뜬 순간(악마의 마법에서 풀린 순간) 그녀는 홀로 힘든 생활을 헤쳐나가야 하지만, 왕자님은 언제나 신데렐라의 곁을 지키는 키다리아저씨가 되어 그녀가 충분히 왕비가 될 자격이 있음을 알 때까지 기다려 준다. 끝!

 

하하하... 이렇게 끝내면 섭섭하지...

 

나는 여류작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어의 없는 문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상황설정, 지나치게 서술적이고,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의 나열을 자신의 지식을 들어내는 빛나는 어휘력 쯤으로 이해하는 듯한 사람들의 글을 몇 번 본 이후로 나는 여류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 않게되었다. 여류작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공지영의 글을 읽다보면, 글을 위해 인생의 한 부분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아픔 없이 앎을 성취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진진(이주연)은 아마 여류 작가 인 것 같다. 혹시 진진이라는 것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프로젝트 팀의 이름이며, 이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은 사람이 이주연-팀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에는 책을 한 사람이 쓰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의 경험과 문체를 공유하고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과 같은 방법으로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왔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경험과 다각적인 관점을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을거라는 생각은 그다지 쉽게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책은 한 사람이 쓴 책이 결코 아니다. 믿을 수 없다. 물론, 나의 이런 결론이 아무런 근거도 없고, 허무맹랑한 결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이 로맨스 소설의 범주를 넘어 매우 완성도가 높고, 아름다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200권 읽기"는 실패가 확정적이지만, 그런 목표가 없었다면 평생 읽지 못했을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또 하나의 수확이라는 생각에 목표를 향해 계속 도전하려 한다.

 

내일부터는 청주로 내려가게 된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느낀, 나의 호르몬의 분비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며 한번 더 로맨스 소설을 읽어보려 한다. 아마도 "가질 수 없다면 널 사냥하겠어"와 같은 완성도 높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1세기를 여는 로맨스 소설로 "가질 수 없다면 널 사냥하겠어"를 강력히 추천한다.

물론 내가 읽어 본 것들 가운데서.

"인연만들기" 이후로 두번째로 읽은 로맨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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